시 부문 당선: 이형초(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3)
잔치를 열까 헛물을 켤까
저희 국숫집은 비 오는 날이면 문을 열어요 거리에 죽어가는 사람이 생기면 교회나 신당보다 이곳을 먼저 찾을 테니까 귀가 프라이팬 손잡이처럼 자라고 눈동자는 은색 껍질 멸치처럼 타들어가고 청계광장에 널브러진 등불도 물비린내를 환기하고 가는 날씨
주인아줌마는 내가 메밀 면을 삶고 있으면 메물, 멸치 똥을 제거하면 메러치, 하고 불러요 그동안 나는 어딘가 사라져 있죠 멸치 머리를 뜯고 배 안쪽을 매만지면 분명 있다는 기분이 드는데, 그건 결국 착각인 것 같고 착각은 종소리를 딸랑이며 문을 닫는 손님들 같고
서로에게 외상을 진 표정으로 마주 보는 부부
국수를 당기며 이거 국물이 진짜야,
면발이 턱을 때리고 안경에 국물이 튀고
입술을 각자 닦아도
진짜라는 말을 들으면 나도 그곳에 앉고 싶은 기분이 들어요
튀김처럼 바삭거리는 빗소리를 삼아 소금도 한 주먹 구로의 등대와 판교의 오징어잡이 배는 밤마다 불빛으로 술렁이고, 길거리엔 사람들이 한 뭉치로 흘러가요 헛물을 켜는 광장 사이로 비가 날마다 내립니다 여럿이 입을 열어도 같은 소리가 나는 곳
우리는 허기를 기억하기 위해 배를 채웁니다
자리를 비우지 마렴 오래 끓일수록 비린내가 난단다 주인아줌마가 파 한쪽을 쫑쫑 썰어댈 때마다 바깥 소음은 규칙적으로 잘려요 저는 생각보다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사람인가 봅니다
잔치 하나요, 주문을 시키면 우리에게도 언젠가 잔치가 열릴 수 있을까요
소면을 둥글게 말아 그릇에 담고 육수는 국자 세 스푼, 고명을 사뿐히 얹으면 박하사탕껍질처럼 확신으로 가득 차고 싶은 마음
국수를 건네요 혓바늘에 걸리는 비릿한 슬픔도 환하고 매콤해집니다
제4회 3·15청년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예심 심사를 맡은 이재성 시인과 청년의 도전정신 및 가능성이 있는 작품에 좋은 점수를 주기로 했습니다. 예심에서 본심으로 넘어온 작품은 「극지에 가고 싶은 바보 일대기」, 「방 정리가 끝나면 먼 곳으로 이사를 갈 수도 있겠다」, 「아침」, 「재생」, 「잔치를 열까 헛물을 켤까」 등 5편이였습니다.
먼저 「극지에 가고 싶은 바보 일대기」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말하고 싶은 감정은 있으나 구체성을 담보로 한 표현력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방 정리가 끝나면 먼 곳으로 이사를 갈 수도 있겠다」는 제목부터 청년답게 시의 형식에서 벗어난 특이점을 보였습니다. 싱일볼을 통해 굉장히 시를 확장시키고 밀고 가는 힘이 좋았습니다. 또한 「아침」은 고양이를 통해 일반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세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비유와 묘사가 좋으나 주제의식이 핵심메시지로 표현되는 부분이 모호했습니다.
「재생」 역시 시적 표현력과 문장력은 있으나 결론적으로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은지 자신만의 언어 속에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플라나리아의 속성에 대한 시간의 포착과 비유가 공감을 이루지 못한 부분이 아쉽습니다.
마지막으로 「잔치를 열까 헛물을 켤까」 는 상상력이 좋고 세상을 단단하게 보고 있었습니다. 진짜와 가짜는 한 끗 차이일지도 모릅니다. 비극과 희극도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국수를 건네요 혓바늘에 걸리는 비릿한 슬픔도 환하고 매콤해집니다’ 이러한 간극의 차를 간파한 문장을 통해 「잔치를 열까 헛물을 켤까」를 당선작으로 선정했습니다.
끝으로 청년문학상 시부문 응모작은 총 176편이었습니다. 응모작 편수와 작품 수준이 많이 향상되어 3·15청년문학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특히, 3·15의거, 민주주의를 소재로 한 작품의 수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청년의 눈으로 주제의식을 이끌어가는 힘이 부족한 작품이 많았습니다. 불의에 항거하고 ‘자유, 민주, 정의’인 3·15의거 정신을 형상화하기에는 소품이거나 너무 예스러운 작품이 다수였습니다. 보다 신선하고 건강한 청년의 도전 정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당선작의 주인공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투고한 모든 청년에게는 격려의 마음을 보냅니다. 단 한 줄의 시가 청년의 마음에 등대가 되길 바랍니다.
정일근(시인), 이재성(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