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3·15청년문학상 현상 공모 -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주사위'
제4회 3·15청년문학상 현상 공모 -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주사위'
  • 언론출판원
  • 승인 2023.07.0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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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부문 당선: 박소현(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4) 

 

주사위


  모래판 가장자리에 섰다. 하품이 나올 기미가 느껴지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모래 위에 포개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두었다. 상의를 탈의한 채 누워 있는 둘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뱉어내길 반복했다. 한 차례의 연습 경기를 마친 후였다. 마치 어렸을 때 만졌던 흰색 지점토를 뭉쳐놓은 형상에 가까웠다. 모든 걸 지켜보던 최 감독이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정수리부터 머리가 하얗게 세고 있는 감독은 싫은 소리 하는 법을 몰랐다. 너희가 씨름의 미래다. 미래의 천하장사는 안일공고에서 나온다. 사뭇 진지한 얼굴로 버릇처럼 하는 말을 들을 때면 웃음기를 숨기기 어려웠다.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씨름은 미래를 위한 대비책이 아니었다. 사용이 불투명한 장기 보험을 들어놓은 상태에 가까웠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몸의 부피가 커지자 얄팍한 더위에도 금세 땀이 흘렀다. 감독은 두 사람에게 오금당기기와 앞다리들기 같은 기술을 알려 주다 벽면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시침이 일곱 시를 가리켰다. 감독이 오른손을 허공에 휘젓자 모두 고개를 조아렸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그는 씨름장 입구를 지나 주차장으로 갔다. 창문 너머로 그랜저의 배기음이 들리고서야 허리춤에 차고 있던 청색 샅바를 풀었다. 
  유월의 일몰은 늦었다. 어둠이 일찍 스며들 때의 기억은 없는 것인지 저녁 시간에도 훤했다. 창 너머로는 불이 꺼진 교정이 보였다. 운동장에서는 대여섯 명 정도로 보이는 사람들이 축구를 하는 듯했다. 공을 발치에 두고 이리저리 몰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학교 뒤편으로 보이는 산 능선 위로는 주황빛을 머금은 태양이 하늘에 박힌 채였다. 나는 그제야 모래판 중앙을 밟았다. 뭉쳐 있던 두 사람은 바닥에 깔아놓은 수건에 발바닥을 비비며 모래를 털어내고 샤워실로 모습을 감췄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만기가 두 손을 번쩍 든 채로 포효하고 있는 사진이 보였다. 오른쪽으로는 강호동이 박광덕을 안고 엎어치기 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17살, 씨름하겠다고 결심한 날부터 지금까지 보고 또 봤던 사진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은 그저 지루한 장면에 불과했다. 청색 샅바를 손에 쥐었다. 긴 머리카락처럼 청색과 홍색 샅바가 늘어진 채 있는 철봉에 걸어 놓으면 정리는 끝이었다. 샤워실에서 물줄기 소리와 무어라고 재잘거리는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소지품을 올려 두는 선반에 놓아둔 주사위를 만지작거리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나는 언제나 그들보다 늦었다. 늦게 씻었고 모두가 떠난 씨름장의 불을 끄고 유리문을 닫았다. 정성찬, 너는 좋은 거다. 형들이 안 패잖아. 모래를 밟을 때면 두 사람이 하던 말을 종종 떠올렸다. 좋은 건가. 관심이 없다는 건 나에게 좋은 의미인가. 고등학교 입학한 봄, 벚꽃의 몽우리가 잡힐 때쯤 체육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씨름 훈련장에 갔다. 또래보다 큰 덩치가 씨름에 좋다고 말하는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손목이 붙잡힌 채로 훈련장에 들어서자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그들은 연필이 아닌 상대의 샅바를 쥐었고 시험지에 치열하게 답을 적어가는 일 대신 모래판 위에서 힘을 겨루었다. 투지가 있는 눈빛과 순간의 실수를 막기 위한 몸짓은 치열했다. 욕망과 목표를 가진 신체는 빛났다. 건강한 몸은 다 타고 남아버린 재의 성질과 거리가 멀었다. 엎치락뒤치락 힘을 겨루고 있는 그들에게는 평생 꺼지지 않은 불씨가 가슴 깊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게 씨름의 첫인상이었다. 뜨거운 모래판에 반했지만 혼자 외딴섬처럼 남겨졌다. 눈을 부라리는 형들과 친하게 지낼 수도 연습 경기를 할 수도 없었다. 총 세 명이 씨름부의 인원이었다. 그보다 130kg, 장사급인 나의 몸무게를 견딜 사람이 없었던 탓이다. 역사급인 두 사람과 경기한다면 체중이 낮은 사람이 다칠 확률이 높았다. 자연스레 모래판에서 나의 위치는 중앙이 아닌 원의 모선이 되었다. 중앙에서 벗어난 채로 여름에는 흐르는 땀을 닦았고 겨울에는 몸을 떨었다. 훈련하지 않으니 기술은 전혀 늘지 않았다. 오히려 뒷걸음질이었다. 터득한 재주가 있다면 천장에 달린 백열등을 보고 6분 동안 눈을 감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가끔은 눈을 감고 머릿속에서 훈련장에 들어서기 전까지 만지작거렸던 주사위를 굴렸다. 유일하게 나의 행동에 제동을 걸지 않는 것은 주사위였다. 높게 던지면 던지는 대로 앞으로 굴리면 굴리는 대로 주사위는 정직하게 나아갔다.
  정육면체 도형에 까만색 점이 박힌 주사위는 항상 이고 다니는 물건이었다. 일부터 육까지 표시된 주사위는 나의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다. 누가 보면 덩치는 산만 한 녀석이 손가락 두 번째 마디 정도의 크기인 주사위를 만지작거린다며 놀릴지도 몰랐다. 작은 주사위로 운세 점을 치고 7월에 있을 대통령기 전국 씨름 장사 대회에서의 상대 선수를 예상하기도 했다. 일이 나온다면 아주 가뿐하게 넘길 수 있는 상대라는 의미였다. 육이 나온다면 정수리에서부터 발가락의 가장 말단까지 힘을 주어야만 한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예상은 그저 허상에 가까울 뿐이기에 금방 힘이 빠졌다. 몸으로 겪지 않고 머리로만 상상하는 처지가 우스웠다. 어떤 상대가 나오더라도 제대로 훈련하지 않은 보다 나을 터였다. 그렇기에 관심을 끄는 건 미래에 관한 이야기였다. 씨름을 포기해도 괜찮은지, 포기해도 입에 풀칠은 할 수 있는지. 모든 질문을 주사위에게 물었고 주사위는 묵묵히 숫자로 알려주었다. 높은 숫자가 나오는 날엔 당장이라도 엄마와 최 감독에게 씨름을 그만두겠다고 말할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모래판을 밟은 채 생선 대가리를 치는 엄마의 둔탁한 손길을 떠올리면 혀가 딱딱해졌다. 둘 중 무엇이 진짜 자신의 마음인지 헷갈렸다. 씨름 선수인 아들 뒷바라지에 온 힘을 쏟은 엄마는 종일 생선 대가리를 칼로 내려칠지도 몰랐다. 둔탁한 칼질이 엄마의 고통을 풀어내는 방식이었다.
  물기 젖은 머리를 손으로 털어낸 다음 훈련장의 불을 껐다. 고개를 뒤로 돌려 어둠이 내려앉은 모래판을 확인했다. 모래의 뜨거운 열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새침한 표정으로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몸이 엎어지는 소리와 기합을 넣던 오후의 분주함이 융화되어 창문 틈새로 사라진 마냥 고요했다. 밖으로 걸음을 옮겨 유리문 위로 손을 뻗어 잠금장치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제대로 문이 닫힌 것인지 문을 두어 번 흔든 다음에야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할 수 있었다. 공을 차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은 지 오래였으며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등을 움츠리며 상의를 펄럭였다. 배에 달라붙은 옷이 군살을 드러내고 있어 불편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학교를 빠져나왔다. 땀을 닦으며 부지런히 걷자 시장 후문이 보였다. ‘인심이 넘치는 안일전통시장,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깍듯한 인사를 건네는 푯말을 지나쳐 정문으로 빠져나가야만 했다. 지나가는 동안 낯익은 어른들이 생선 가게 아들이 이제야 학교 마치고 집에 간다며 알은체했다. 멋쩍은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조아려 그곳을 황급히 벗어났다.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빨간 벽돌로 지어진 우리 집이 보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엄마와 내가 얹혀사는 곳이었다. 지금은 방안에만 누워 있는 할머니의 집이니까. 시장 사람들은 할머니가 숟가락 놓으면 며느리가 집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으니, 곧 금방이라고 엄마에게 소곤거렸다. 나른한 주말의 오후였고 나는 가게 구석에 앉아 고등어구이의 가시를 발라내고 있었다. 엄마는 갈라진 고등어의 배에 굵은 소금을 치며 재수 옴 붙는다며 화를 냈다. 내 아들 잡아먹어서 자식 키운다는 소리를 달고 살았던 시엄마라고 해도 엄마는 할머니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씨름에 들어가는 돈이 할머니의 통장에서 나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주말 동안 삼척으로 떠나는 전지훈련 금액과 최 감독에게 줄 수업료……. 아직도 그때 목에 걸린 고등어의 잔가시의 느낌이 종종 떠올랐다.
  밤색 대문을 밀고 들어가자 매콤한 냄새가 났다. 무를 넣은 꽁치 조림 냄새였다. 고춧가루와 간장을 과하다 싶을 만큼 넣은 조림은 엄마가 자신 있는 음식 중 하나였다. 느릿한 발걸음으로 문을 열고 거실에 들어섰다. 42평 남짓한 집에서 엄마와 나의 취향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남향으로 내어 있는 통창과 세월의 재취가 느껴지는 목조 가구는 온전히 할머니의 정서를 반영했다. 부엌에서 국자로 국물 맛을 보고 있던 엄마는 나를 보고 화색이 되었다. 가게에서 매고 있던 두건을 벗는 걸 깜빡한 모양이었다.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하얀색 꽃무늬가 자욱한 두건 중앙에 적혀 있는 ‘천하장사 생선’이 눈에 띄였다. 시장 안에서 엄마는 장사댁으로 통했다. 장사 아들을 두었다는 의미로 그렇게 불리었다. 우리 아들이 아직 장사는 아닌데, 그렇게 불러주면 고맙다며 호탕하게 웃는 엄마의 표정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었다. 머쓱하게 웃으며 짧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일이 나의 역할이었다. 노란색으로 자수가 새겨진 네 글자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내 목표는 이제 천하장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할 수 있을까.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주사위를 매만졌다. 민망함과 불안함을 견딜 수 없을 때 나는 종종 주머니에 고이 잠든 주사위를 깨웠다. 주사위는 투정 부리지도 않고 내 손에 자신을 맡겼다. 네 마음대로 해, 어둠 속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훈련 마쳤어?”
  “응.”
  “일단 앉아서 저녁 먹어. 배고프지.”
  가스레인지 위에 끓고 있던 냄비가 식탁 위에 올라왔다. 밥그릇에 산처럼 쌓아 올린 흑미밥과 조림을 동시에 쳐다보니 자연스레 군침이 돌았다. 목울대로 침을 삼키며 숟가락을 들었다. 따뜻한 밥과 조림을 크게 떠서 먹는 나를 보며 엄마는 반찬이 더 필요하지는 않냐고 물었다. 입에 밥을 가득히 욱여넣은 채 뭉그러지는 발음으로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답했다. 부엌에서는 숟가락이 부산스레 움직이는 소리만 울렸다. 앞에 앉은 엄마는 그제야 두건을 풀었다. 젖은 두건에서 생선 비린내가 미약하게 났다.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하얀 꽃들은 시든지 오래였다. 하얀 꽃잎은 누렇게 변했으며 기력도 없어 보였다. 생기를 머금는 법도 모른 채 물비린내와 생선의 내장을 수도 없이 보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엄마가 입술을 여러 번 달싹이다가 조림에 시선을 둔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쉬이 꺼낼 수 없을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 엄마를 애써 무시한 채 입에 꽁치를 욱여넣었다. 씨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나의 마음을 모르는 듯 대회 이야기를 꺼냈다. 밥을 씹는 속도가 느려졌다.
  “리환이랑 또 경기하겠지? 장사급에 있는 선수들이 워낙 한 줌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의 말처럼 고등학교 장사급은 선수들이 다양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원급의 무게를 가진 학생이 많았기에 장사급은 꼬리물기였다. 그놈이 그놈이랑 붙고, 다시 그놈이 그놈이랑 겨루는 구조였다. 옛날에는 장사급이라도 사람이 많았는데. 안개 속에 있는 기억을 더듬는 표정으로 최 감독은 종종 과거를 회상했다. 하지만 나는 같이 훈련할 사람도 새로운 상대를 치열하게 몸으로 분석할 기회도 없었다. 나에게 중요한 건 뒷걸음질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발자국이었지만 매번 후퇴를 거듭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모래가 뒤덮인 사막을 걷고 있는 꿈을 꾸었던 적이 있다. 겨드랑이와 등줄기에서 땀이 자꾸만 흘렀다. 갈증이 심했다. 목이 마르다 생각하며 앞으로만 걸어가길 반복했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을 때 발자국은 없이 허허벌판인 모래사막이 펼쳐졌다. 창문을 통해 빛이 어스름하게 들어차던 새벽이었다. 입에 물고 있던 밥이 침과 섞여 뭉그러졌다. 목울대를 움직여 완전히 삼킨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걔는 이기기 어려울 거야.”
  리환은 고도의 기술로 설계된 로봇이었다. 결점이라곤 모르는 기술과 단단한 몸이었다. 상대에게 빈틈이 들켰을 때 재빨리 보완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사람들은 그의 몸짓에 감탄하고 메달은 리환이의 목에 걸리는 게 순리라는 듯이 여겼다. 주머니에 넣어둔 주사위를 매만졌다. 엄마는 바지 주머니에 넣은 손을 곁눈질로 바라보다가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들의 입에서 꼭 이기겠다는 다짐을 듣고 싶었던 의도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와 격차가 닿을 수도 없게 벌어졌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더군다나 미꾸라지처럼 유연하게 내 다리 사이를 파고드는 감촉을 잊을 수 없었다. 모래판에 등이 닿아 천장에 달린 조명을 멍하니 바라보았던 순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포효하는 그의 목소리는 체육관을 덮었다. 한 마리의 맹수에게 사냥당한 꼴이었다. 분하지 않았다. 응당 겨울이 되면 칼바람이 뼈를 시리게 만들고 여름이 되면 활기 띤 파도가 바위에 부서지는 일처럼 당연한 결과였다. 그가 긴 마라톤 경기에서 쉬지 않고 달렸다면 나는 출발선에 선 채로 꽁무니를 바라보고 있는 선수의 처지였다.
  “그래도 한 번은 이겨야지. 할 수 있잖아.”
  엄마의 목소리는 흥분에 젖어 있었다. 한 번은 이겨야지. 사람들이 나를 향해 줄곧 하는 말이었다. 묵묵히 젓가락을 들고 조림에 담긴 생선을 집었다. 밥그릇에 놓고 흰 살코기를 배어 입에 넣었다. 유튜브에 ‘제일공고 김리환’을 검색하면 대회에서 올린 경기 영상이 일렬로 펼쳐졌다. 지나간 봄에 나는 그의 경기를 차례대로 재생했다. 최 감독이 그의 약점을 알아야만 된다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볼이 상기된 초등학생 때와 곰과 같은 체격을 갖게 된 청소년기의 모습이 영상으로 담겨 있었다. 진한 이목구비와 눈썹, 볕에 그을린 듯한 피부가 돋보였다. 감독의 지시와 달리 그의 등 뒤로 걸쳐져 있는 여자에게 오래 시선을 두었다. 어눌한 한국어로 기죽지 말라는 외치는 목소리는 심지가 굵었다. 단전에서부터 우러나온 힘이었다. 그의 엄마였다. 상대방의 샅바를 쥐는 김리환의 손과 눈빛에서 맹렬함이 느껴졌다. 실제로 그 눈을 마주했을 때는 모래판이 아닌 살얼음판 위에 서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댓글에는 축하한다는 말과 선수들에게 야유를 보내는 댓글이 섞여 있었다. ‘딱 봐도 동남아 출신인 애인데. 쟤한테 지면 어쩌자는 거냐. 한국 씨름 미래 존나 노답.’ 댓글에 오랫동안 시선을 두었다. 동남아 출신과 그에게 지면 안 된다는 글이 녹아버린 사탕처럼 끈끈하게 녹아 마음에 들붙었다. 똑같은 국적을 가진 선수였는데. 축축해진 밥을 삼켰다. 숟가락을 놓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할 수 있지?”
  엄마는 사뭇 가라앉은 목소리로 날 향해 물었다. 여전히 주머니에 넣은 손으로 주사위를 만지작거렸다. 발바닥이 바닥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손바닥의 땀이 흥건했다. 손가락 사이로 주사위가 빠져나가려고 하자 움켜쥐었다. 자연스레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씨름을 배우겠다니 장하다고 엄마는 새벽까지 되뇌었다. 이후엔 줄곧 장사가 되어야만 한다고 고집했다. 바람 빠진 바퀴에 엄마는 욕심을 불어넣었다. 아빠가 죽은 이후 삶에 활기를 찾은 아들을 반가워하는 표정이었다. 나 역시도 방향을 잃은 배의 돛대가 올라오고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돛은 낡았고 방향을 정하기는커녕 가냘픈 바람에도 쉬이 휩쓸렸다. 떨리는 입술을 떼려는 순간 앙칼지고 높은 외침이 들렸다. 할머니였다. 갈라진 목소리가 어느 짐승의 울음처럼 들렸다. 엄마는 할머니가 누워 있는 방으로 분주히 걸음을 옮겼다. 기저귀가 축축하다거나 다리가 저리다는 이유로 엄마를 불렀을 테다. 할머니는 시장 통로에서 속력을 내던 오토바이를 피하지 못했다. 짜증이 늘었고 어떤 하루는 조용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지냈다. 그럴 때면 할머니가 축축한 시장 바닥을 떠올리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차갑게 식어버린 조림이 중앙에 놓여 있는 부엌을 못 본 체하고 신발장으로 갔다. 운동화를 꺾어 신고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피신했다. 
밤에도 후덥지근한 공기가 웃돌았다. 해는 자취를 감추었고 매끄러운 달이 빛났다. 대문 맞은편에 있는 주황빛의 가로등 조명이 마당을 물들였다. 저 멀리서 비틀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소리만 들어도 취객임이 분명했다. 그는 문 앞에 서서 무어라고 중얼거리다 멀찍이 사라졌다. 소란스러움이 썰물처럼 빠지고 고요함이 밀물처럼 밀려오자 주머니에서 주사위를 꺼냈다. 하얀 정육면체 위로 얼굴에 기미가 자수처럼 빼곡하게 놓여 있는 사내의 얼굴이 겹쳤다. 바닷바람의 냄새와 새벽 수산 시장의 비린내, 땀내가 젖은 작업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주사위는 아빠의 유품이었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아 오던 아빠는 주사위로 점을 쳤다. 높은 숫자가 나오면 대어를 낚고 낮은 숫자가 나오면 그 반대였다. 녹초가 되어 돌아온 남자에게 있어서 저녁이 되면 주사위로 점을 치는 건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이른 새벽 바다로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초저녁까지 잠을 자는 반복된 생활 속, 유일하게 어둠이 들이차는 시간에 활기를 띠었다. 아빠는 가끔 나에게도 주사위를 던지게 해 주었다. 어렸음에도 골격이 꽤 굵었던 나를 품에 안고 작은 손바닥 위에 주사위를 조심스레 놓아주었다.
  “모 아니면 도라는 걸 알려주고 싶은 거냐. 정신이 어디로 빠져서는.” 
  식탁에서 엄마와 함께 하루치의 가게 장부를 계산하고 있는 할머니가 미간을 찌푸렸다. 엄마는 할머니를 흘긋거리며 눈치를 보았다. 아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사위를 던지라고 했다. 조심스레 바닥으로 던진 주사위는 굴러서 소파 아래에 들어갔다. 바닥에 엎드려 납작해진 몸으로 손을 뻗었다. 오랫동안 묵혀진 먼지 더미 속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는 주사위를 꺼냈다. 숫자는 일이었다. 금세 울적해진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보았다. 나 때문에 대어를 낚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할머니가 혀를 찼다. 하루 장사 망했다며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땀이 난 손바닥을 배꼽 아래에 모아 옷에 비볐다. 
  “인생은 주사위랑 비슷해서 울적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즐거운 일이 찾아오는 거야.”
  귀에 속삭인 아빠가 웃어 보였다. 식탁에 앉아 있는 두 여자는 장부의 매출액이 맞지 않는지 이따금 계산기를 두드리며 갈치와 고등어를 얼마나 팔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생사라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나이였기에 고요하게 전해진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말의 의중이라거나 요점을 정확하게 해석할 정도로 명석한 4학년이 아니었다. 한동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팔을 괴고 인생과 주사위에 대해 골똘히 되뇌었다.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아빠의 말은 기억에 남아 쉬이 떠나지 않았다. 기억은 마음과도 통하는 통로가 있는지 심장 부근이 저릿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밤, 풀벌레가 기척을 내며 고집스레 울어대던 하루 속에서 새겨진 말은 몸의 영양분이 되었다. 내가 스스로 주사위를 던지며 점을 치는 날이 찾아오자 그때 들은 말을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마당 중앙에 우두커니 선 채 숨을 내쉬었다. 주사위를 바닥으로 굴리지 않고 허공으로 던지고 싶었다. 아주 높게 보란 듯이 던져 땅에 유연하게 착지하는 주사위가 보고 싶었다. 바닥에서 구르는 주사위가 아니라 날개를 단 듯 어둑한 밤하늘을 쾌청하게 날아오르는 장면이 필요했다. 모래판에서 진득하게 붙어 있는 두 사람을 보느라 갈증이 났던 탓이었다. 
“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육,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일, 잘 모르겠으면 삼이야.”
주사위를 하늘 높게 던졌다. 내 키보다 두 배 이상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밤하늘에 하얀 별처럼 주사위가 일순간 박혔다. 너무 높게 떠 버린 주사위가 저러다 하늘에 박혀 별이 되어 버리면 어쩌지 짧은 찰나에 고민할 정도였다. 수직으로 떨어진다는 예상과 달리 주사위는 포물선을 그리며 옥상으로 사라졌다.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던진 게 화근이었다. 고개를 들어 옥상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드리운 어둠이 집 전체를 감싸는 모양이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올라 옥상으로 갈 생각을 하니 이마에 땀이 맺혔다. 겨드랑이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걸음을 계단으로 느릿하게 옮겼다. 대문 오른편에 있는 계단을 하나씩 올랐다. 총 21개의 계단을 올라서 작은 주사위를 찾아야만 했다. 절반을 오르니 숨이 거칠어졌다. 체력 훈련을 게을리한 게 티가 났다. 두꺼운 다리를 하나씩 뻗을 때마다 살이 출렁였다. 몸을 구성하던 근육들이 점점 자리를 잃어가는 모양이었다. 흉통을 최대한 열며 숨을 들이마시고 뱉었다. 땀을 부지런히 닦으며 계단을 오르니 어둠이 자욱하게 깔린 공간이 펼쳐졌다. 마지막 계단에서 몸을 돌려 펼쳐진 풍경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시장 정문 푯말은 제 존재감을 과시하듯 중앙에 박혀 있었다. 그 주위로 빨간 벽돌로 비슷하게 지어진 단층집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였다. 왼쪽으로 시야를 돌리면 크레인 두어 대가 보였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모양이라고 어른들은 말했다. 교회의 십자가와 횟집, 고깃집에서 나는 돼지갈비의 달짝지근한 양념 냄새와 취객 소리, 편의점 간판의 불빛이 밤 속에 파묻혀 있었다. 막 연극이 끝난 무대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어둠이 구석까지 스며든 옥상에서 작은 주사위를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낮에는 방수 페인트칠을 한 녹색 바닥이 밤에는 완전히 다른 옷을 입은 채로 날 맞이했다. 처음으로 주사위를 던진 날에 그랬듯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사각형 구조인 옥상의 모서리를 손으로 훑어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 명과 암이 명확하게 대비되는 공간 속에서 하얀색은 제빛을 내기 마련임에도 보이지 않았다. 웅크려 있던 몸을 일으켰다. 똑같은 공간을 계속 맴돌았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어디로 솟아버렸을까, 구멍에 빠져버린 걸까. 여러 경우의 수를 떠올렸지만 마땅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손에 잡고 있던 주사위의 감촉이 전생처럼 느껴졌다. 한바탕의 해무처럼 흩어져 모습을 감추었다. 몇 년 동안 의지하던 주사위이자 아빠의 공백을 채워주기도 했던 것이었다. 날이 밝으면 다시 옥상에 올라와 주사위를 찾아야만 했다. 윗옷을 펄럭이며 바닥에 앉았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다가 열기를 머금은 공기가 훅 끼쳤다. 곧 본격적인 여름이 찾아오면 이른 열대야가 시작되리라 예상하는 일기예보가 불현듯 떠올랐다. 이전에 점을 쳤던 건 주사위가 보이지 않으니 무효였다.
  안방에서 두 여자의 코골이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는 매번 할머니의 곁에서 잠을 잤다. 조금 열려 있는 문틈으로 기웃거렸다. 두툼한 매트를 깔고 얇은 차렵이불을 덮은 엄마의 배가 부풀어 올랐다가 꺼졌다. 엄마가 할머니의 곁에서 자는 게 탐탁지 않았다. 새벽에 자다가 깬 할머니의 곁에 누군가가 없을 때 할머니는 종종 고함을 질렀다. 그 이유가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엄마는 말했다. 늙으면 몸이 작아지고 아이처럼 겁도 많아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의 눈엔 돈을 내주었으니 이 정도는 해라, 하는 외침처럼 들렸다. 할머니는 입술을 살짝 벌린 채로 잠든 상태였다. 불길한 꿈을 꾸고 있는지 미간에 주름이 졌다. 두 사람의 얼굴 위로는 한낮의 고단함이라거나 지루한 시간을 멀끔히 씻어버릴 어스름이 스며든 채였다. 시선을 거두어 방으로 가 불도 켜지 않은 채 좁은 침대에 누웠다. 큰 몸을 싱글 침대에 욱여넣자 매트리스의 스프링 소리가 들렸다. 아직 잘 시간은 아니었지만 움직일 기운이 없었다. 주사위가 끈끈하게 몸에 달라붙는 기분이었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쩌면 정말 그 찰나에 하늘에 박혀 별이 된 것일까. 새들이 주사위를 물고 간다면 손을 쓸 수는 없을 텐데. 걱정이 끊이지 않고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왼쪽으로 몸을 돌려 웅크렸다. 큰 실수를 한 아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집에 쥐가 산다.”
  할머니의 잠꼬대가 들렸다. 또렷한 발음이었다. 평소처럼 자주 듣는 날카로운 비명 섞인 고함이 아니라 잔잔하게 흘러가는 물결과 같은 목소리였다. 텔레비전에서 늦은 오후 소나기가 내린다는 정보를 전달할 때 어울리는 높낮이였다. 이불이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다가 멈추었다.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고요하게 들려왔다. 쥐가 산다니. 천장을 바쁘게 뛰어다니는 쥐 소리는 들은 적이 없는데. 할머니는 엄마와 내가 집을 비워두었을 때 혼자서 쥐를 보았던 걸까. 궁금했다. 꿈에서까지 할머니를 따라다니는 쥐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할머니는 쥐를 보고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을까. 고함 섞인 목소리로 쥐를 쫓아내라고 말하지 않는 할머니가 낯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 눈은 캄캄한 방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타지도 이국도 아닌 내 방이었다. 포장을 뜯지 않은 택배 상자 두 개가 나뒹굴고 오동나무로 짠 원목 장롱, 엄마가 가지런히 개어놓은 훈련복과 옷이 책상 위에 쌓아져 있었다. 퇴적층처럼 겹친 채 있는 옷들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작은 창문 너머로 늘어진 발걸음 소리가 얄팍하게 들렸다. 아까 스쳐 갔던 취객과 이상하게도 발소리가 비슷했다. 주사위에 대한 걱정은 부메랑처럼 멀리 달아났다가 돌아오길 반복했다. 야심한 새벽으로 향해가는 밤이었고 모래밭에 서 있던 무거운 몸은 잠을 재촉했다. 나른해진 눈을 감았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울리는 휴대전화 알람이 잠을 깨웠다. 실눈을 뜨고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휴대전화를 더듬어 ‘종료’ 버튼을 눌렀다. 여섯 시엔 학교 운동장으로 가야만 했다. 흙이 덮인 운동장을 서른 바퀴 뛰는 일이 씨름부의 아침 일정이었다. 화장실로 가 고양이처럼 대충 얼굴을 씻은 다음 나이키 기능성 체육복을 입었다. 식탁 위로 엄마가 차려놓은 미역국과 밥이 있었지만 먹지 않았다. 아침을 먹는다면 주사위를 찾을 시간이 부족했고 주사위를 찾는다면 아침을 포기해야만 했다. 안방의 문틈을 살짝 열어 할머니께 고개를 조아렸다. 할머니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보고 있었는데 어젯밤에 드리운 어둠이 걷히지 않은 느낌이었다. 황급히 옥상으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했다. 가쁜 숨을 뱉으며 도착한 옥상에는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초록색 바닥에 하얗게 박혀 있는 건 옥상을 지나가던 새의 배설물이 전부였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옥상이 아니라면 어디로 떨어진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드넓은 사막에 혼자 서 있는 처지가 된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다 걸음을 돌렸다.
  학교 정문에 도착하자 최 감독의 차가 옆에 섰다. 그가 운전석의 차창을 내렸다. 까만 선글라스를 낀 그는 훈련장의 불을 켜고 에어컨을 미리 틀어 놓으라고 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덥다며 투덜거림이 묻어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오늘도 천하장사를 위해 열심히 하자며 넉살 좋은 웃음을 보였다. 정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 훈련장으로 갔다. 어제 닫은 문을 다시 열었다. 최 감독이 하는 말이 맴돌았다. 나는 대체 무엇을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운동장은 백날 뛰어봐야 소용없다는 건 이미 알았다. 기술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의 필요는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른 아침의 햇살이 궤를 그리며 스며들고 있는 씨름판이 보였다. 윤슬을 머금은 강처럼 모래알이 반짝이고 있었다. 왼쪽 구석에 놓인 스탠드형 에어컨으로 다가가 온도를 26도로 설정했다. 씨름판의 중앙으로 가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똑같은 사진이 여전히 벽에 붙여진 채였고 샅바는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 
  변화도 미동도 없는 그것들과 내가 같은 처지였다. 주사위를 쥐지 않은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만약 주사위가 있었다면 오늘도 똑같은 질문을 했을 테다. 씨름을 관두어도 괜찮겠냐는 질문에 주사위의 해답은 과연 무엇일까 떠올렸다. 모래 위에 양반다리를 한 채로 앉았다. 등을 따스하게 감싸는 햇볕이 차가운 모래와 달리 따뜻했다. 널찍한 등판에 따사로운 온기가 감돌자 몸이 노곤해졌다. 금방이라도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지고 싶었다. 똬리를 틀고 있던 다리를 펼쳐 누웠다. 옷이 더럽혀진다는 생각은 뒷전이었다. 창문을 향해 새우처럼 등을 말아 웅크렸다. 얼굴 위로 빛이 스며들었고 눈을 질끈 감았다. 운동장에서는 감독이 호루라기를 불고 있었다. 훈련 전에 호루라기를 불면서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는 게 그의 고질적인 습관이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익숙한 가요였다. 시장 입구에 있는 정육점에서 자주 트는 노래였다.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다는 노랫말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통로를 가득 채웠었다. 호루라기 소리에 맞추어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불렀다. 사라져버린 주사위 걱정은 이미 저 멀리 달아났다. 따스한 볕 안에 웅크린 채로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그저 느리게 흘러가길 바랐을 뿐이다. 질긴 하품이 때때로 흘러나왔다. 눈꼬리에는 눈물이 맺혔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처럼 중간에 못 박혀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길고 긴 하품을 계속했다. 바람 잘 날 없는 몸과 마음이었다. 고개를 숙여 살이 도톰한 발을 바라보았다. 어디로도 가지 못한 두 발이었다. 출발지도 종착지도 모르면서 두 발로 모래를 밟고 있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모래를 적셨다. 내가 씨름을 그만둔 아침이었다.*

 

 

제4회 3·15청년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예심 심사평

  이번 3.15청년문학상의 예심에 올라온 소설은 총 36편이었다. 팬데믹 시즌을 지나며 현저하게 줄었던 단편소설 부문 참여작이 4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작품의 수가 문청들의 열정을 대변한다는 법은 없겠지만, 이번 예심 참여작들은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작품들로 평년의 수준을 한껏 뛰어넘는 것이었다. 문청들은 꿈과 우정, 연애, 가족 등의 개인사와 혁명, 노동운동, 직장 갑질, 취업, 죽음 등의 사회문제를 다양하게 바라보며,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심사를 보며 가장 중요시 했던 것은, 어떻게 자신만의 시선을 지키고 자신만의 문체를 지켜갔느냐는 부분이었다. 본선작으로 올린 7편은 그렇게 각기의 개성을 지니면서 주제를 잘 풀어간 작품들이었다. 
  문학을 창작하고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는 시대이다. 하지만 문청들의 뜨거운 열정을 한껏 느꼈던 시간은 너무나도 행복한 것이었다.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며 예심평을 마치고자 한다.

배길남(소설가) 

 

제4회 3·15청년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본심 심사평

  우선, 3.15청년문학상의 모든 응모자님에게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본심에 오른 7편 중에서 「문영에서」 「주사위」 「홀드」 「노을빛 소풍」을 관심 있게 읽었습니다. 약간씩의 아쉬움 외엔 전체적으로 완성도를 갖춘 작품들이었습니다.  
  「문영에서」는 안정된 문장과 흡인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주인공의 귀국에 관한 뚜렷한 당위성과 목적성이 약했습니다. 쉽지 않은 귀국을 통해 기대했던 지난날의 매듭짓기 또한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주사위」는 꿈을 향해 나아가지도 못한 채 현실의 벽에 부딪힌 주인공의 심리를 차분하면서도 깊이 있게 내면화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주사위를 통한 선친과의 연결성 도모, 현재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위기의식의 출구를 모색해 나간 점이 돋보였습니다. 
 「홀드」는 독창적인 문학성과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가 탁월했지만, 시점의 잦은 변화로 다소 방만한 느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캠핑카」는 매끄럽고 숙련된 문장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할머니의 죽음에 얽힌 의문, 캠핑카 생활의 당위성, 남의 집 앞에서의 제사 의식 등에 관한 설득력이 다소 부족했습니다.  
 「노을빛 소풍」은 독특한 소재와 속도감, 스릴 넘치는 결말이 특장점으로 다가왔으나 심장이식의 병력이 있는 주인공의 신체 변화에 관한 무지한 반응, 돼지 심장 섭취 등에 대한 설득력과 개연성이 더 확보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고심 끝에 단편소설에 적합한 구성의 묘미와 짧고 간결한 문체, 심리 묘사에 탁월했던 「주사위」를 당선작으로 뽑았습니다. 
  당선 작가에게는 축하와 정진의 메시지를, 아쉽게 낙선한 후보자들에게는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공애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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