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라는 말
[기자의 눈]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라는 말
  • 원지현 기자
  • 승인 2023.05.2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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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란다. 부모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또는 친구에게서까지 듣게 되는 이 말은 듣는 이의 기본 윤리가 된다. 나아가 사회의 윤리로까지 자리 잡는다. 이는 옳은 말이다. 남에게 피해는 주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문제가 되는 말이기도 하다. 이 지극히 당연한 말이 어떤 때에는 누군가의 권리에 대한 입마개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이 말이 유독 자주 등장하는 상황들이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이동권 보장 지하철 집회 행동이나 창원 시내버스 노동조합의 최근 파업 등이 예시다.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은 시민 개개인의 목소리에 더해 당시 집권 여당 대표까지 나서 질타했다. 또한, 지난달에 우리 지역에서 일어났던 창원 시내버스 노동조합의 파업 사건 역시 하루 만에 철회되었으나 노동조합원에 대한 비난은 끊이지 않았다.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러한 행동들은 분명 여러 피해를 발생시킨다. 직접적인 갈등 관계에 있지 않은 시민들에게 말이다. “왜 자기들 일을 가지고 애먼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냐”, “다른 데 가서 1인 시위나 해라”. 그렇기에 이에 대한 질타는 대중들의 호응을 받고, 비판에서 비난으로 변모한다. 하지만 그것이 온당할까 생각해봐야 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회 행동은 옳지 못한 것일까? 국정농단 정권의 탄핵을 이끌었던 촛불 집회는 평화로운 한국 민주주의의 쾌거로 불리며 일부는 혁명으로까지 여겨진다. 물론 큰 의미를 가지는 일이 맞다. 하지만 집회가 도심과 대중교통의 마비를 초래하며 대중들의 이동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점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촛불 집회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전장연이나 노조에 가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난해야 하는 건 아니다.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변혁하는 일에는 늘 누군가의 피해가 따른다. 당연한 일이자 변혁의 본질이다.

  주요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과 창원 시내버스 노조의 파업이 피해에 대한 고려도 없이 무작정 진행된 것도 아니다. 전장연은 지난 20년 동안 이동권 등 권리 투쟁을 진행하며 정부, 국회, 지자체와 지속적인 대화와 협상을 시도해 왔다. 시내버스 노조 역시 파업에 앞서 사측, 지자체와 교섭을 요청했다. 그럼에도 이들의 요구는 무시되었다. 그렇기에 행동한 것이다.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라는 말은 사회 행동의 이러한 구조와 맥락들을 무시한 채 피상적인 상황에 집중하게 만든다. 수많은 이들의 사회 행동으로까지 치닫게 만든 오랜 피해는 소거한다. 자신들만의 피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 말의 발화자들에게 외려 유사한 말을 돌려줄 수 도 있을 것이다. 최소한 행동하는 그들을 방해하진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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