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9일, 할로윈데이를 맞아 서울 이태원에 다수의 인파가 몰리면서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압사하여 사상자가 발생한 대규모 참사가 일어났다. 사고가 발생한 골목은 보행로 폭이 4m 안팎으로 매우 좁은 구역이었다. 그러나 현장 통제 및 통행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이는 결국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그날 이태원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10·29 참사라고도 불리는 이태원 참사의 발생 원인과, 국내·외 여론에 대해 알아보자. / 사회부
당시 이태원에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 이후 3년 만에 거리두기 방침과 영업시간의 제한이 없는 할로윈데이를 즐기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그러나 축제에 대한 기대는 사망 158명, 부상 196명이라는 거대한 악몽이 되어 돌아왔다. 정부는 이태원 참사 이후 10월 30일부터 11월 5일 밤 24시까지를 국가 애도 기간으로 정하고, 서울시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 이태원 참사 현장, 무슨 일이 있었나
할로윈데이를 맞아 10월 29일, 이태원에는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운집했다. 그로 인해 점차 거리가 혼잡해지기 시작했고 오후 10시 12분, 소방 당국으로 사람 10명 정도가 깔려있다는 최초 신고가 걸려 왔다. 신고를 받은 소방 당국은 즉시 사고 현장으로 출동했으나 수많은 차량과 인파로 인해 현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어 구조 작업이 지연됐다. 사고 현장으로 진입했을 때는 이미 수백 명의 사람이 뒤엉킨 상태였다. 이후 119구급상황 관리센터 재난 의료 지원팀에게 출동을 요청했으며, 이태원 일대의 축제 중단을 요청했다.
이태원 참사는 가파르고 비좁은 골목에 다수의 인파가 몰릴 것이라 예상했음에도 안전사고에 대비한 현장 관리 및 통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벌어진 대규모 참사다.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 호텔 앞 골목길은 길이 45m, 폭 4m 내외로 성인 5~6명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공간이며, 경사까지 심하게 이어진 비탈길이다. 번화가와 대로변을 잇는 해당 골목길은 특성상 위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이태원역에서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의 동선이 겹쳐 평소에도 많은 인파가 모인다. 그런데 할로윈데이를 맞아 이태원을 찾는 사람이 특히 늘었고 골목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 이상의 사람이 몰리면서 통행에 큰 차질이 일어났다.
결국, 현장에서는 많은 인파가 몰린 탓에 통행자 스스로 걸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목격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밀침이 심해졌고, 그에 따라 오르막길 쪽 사람 중 일부가 넘어졌다고 전했다. 대열이 순식간에 무너지자 이에 내리막에 있던 사람들까지 연쇄적으로 겹겹이 넘어졌다. 신고 이후 현장에 소방 당국이 도착했지만, 인파와 차량으로 인해 신속한 구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사망자 대부분의 사인은 ‘질식에 의한 심정지’로 알려지는데, 이 경우 골든타임은 단 4분에 불과하다. 그러나 구조 지연으로 인해 심정지 및 호흡 곤란 환자가 수백 명에 이르면서 심폐소생술(CPR) 인력도 턱없이 부족해 시민들까지 구조에 동참하기도 했다.
# 정부의 사후 대응과 여론
정부는 사고 당일 11시 52분에 긴급 성명을 내었고 윤석열 대통령은 이상민 행정안정부장관을 중심으로 피해 주민에 대한 구급 및 치료를 지시하였다. 추가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일주일가량 국가 애도 기간을 가진 후, 유가족과 부상자를 지원하기 위한 원스톱 통합지원센터를 설치했다. 지원센터는 중앙대책안전본부 소속으로, 통합민원실 형태로 설치되어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서울시 등의 인력으로 구성된다.
참사 발생 장소의 공간 조사도 시행되었다. 국토부는 불법으로 증축된 건축물 8개와 과거 불법 증축 사실이 적발되었다가, 당시 위반이 해제된 건물 6개를 확인했다. 서울시는 이에 대해 불법건축물 관련 안전 대책으로 시 전역의 위반 건축물 종합 대책 추진 계획을 수립하고 예외 없이 대상 건물을 고발할 예정이다. 이후 위험 여부를 판단해 위반 구조물 철거 계획을 정립하여 진행한다.
하지만 여론은 정부의 대응에 싸늘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한국갤럽은 국민들의 상당수가 정부의 이태원 참사 대응에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통령 직무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들은 52% 정도가 정부 수습과 대응에 납득했지만, 부정 평가자 중에선 90%가 불만을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조사에 답한 시민 중 70%가 정부의 책임 회피와 꼬리 자르기, 늑장 대처, 사전 대응 미흡 등에 실망스럽다고 답하였다. 사건 이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한덕수 국무총리, 그 외 여·야당 정치인들의 부적절한 발언 또한 논란을 사며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민주당 전남도의회 관련 의원들과 국민의 힘 중앙위원회는 애도 기간임에도 술자리가 있는 회식을 진행하여 비판을 받았다.
# 참사에 대한 해외 반응
외신은 사고 당일 정부의 미흡한 대응을 연일 지적하고 있다. 세계 최대 비영리 뉴스통신사인 AP통신은 전문가들의 분석을 근거로 이태원 압사 사고는 사고가 아닌 인재(manmade disaster) 라고 규정했다. 그러며 “한국 정부는 이번 참사를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월스트리트 저널 또한 사건 당일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인파 규모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데에 의문을 드러냈다. 덧붙여 “법 집행기관(경찰)이 경비원처럼 골목길에 대한 접근을 관리했어야 했었다.”라고 주장했다. CNN, 블룸버그, 뉴욕타임스와 영국의 가디언지도 정부가 유동적인 인파 예측을 하지 못했다는 걸 꼬집었다. 영국의 키스 스틸 서포크대 초빙 교수, 미국의 브라이언 히긴스 존제이형사사법대 교수 등의 전문가들도 총괄 책임 조직의 부재를 원인으로 삼았다.
비판과 별개로, 세계는 피해자들에 대해 추모와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다. 각국 정상들은 트위터, 공식 매체 등을 통해 애도를 드러냈으며, 주한 미군은 이태원 참사 합동 분향소를 통해 조문을 이었다. 구글, 유튜브는 추모의 의미인 검정 리본을 메인 화면과 로고 옆에 띄웠다. 스타벅스, 디즈니 코리아, 포켓몬 코리아 등도 기존에 예정되어 있던 행사를 취소하고 애도를 나타냈다. 미주 한인 단체는 유가족들을 돕기 위한 모금 활동을 개시하였으며, 글로벌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서도 사태를 공유하고 묵념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는 “참사 이후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은 언론 등에 사고장소가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불안과 공포가 가중될 수 있다. 사고 현장의 지명을 빼고 10·29 참사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정신건강 측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지난 11월 5일, MBC는 뉴스데스크를 통해 ‘이태원 참사’라고 부르는 대신 ‘10·29 참사’로 부르겠다고 밝혔다. 과거에도 진도 여객선 침몰을 ‘세월호 참사’로, 뉴욕 쌍둥이 빌딩 테러를 ‘9·11 테러’로 용어를 바꿔 사용한 전례가 있었다.
사고 이후 서울-경기권의 지하철과 버스에서는 출근 시간대에 밀침으로 인해 휘청거리는 풍경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시민들이 이태원 참사로 인한 트라우마가 현상으로 나타난 건 아닐까. 각자가 표현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모두가 한마음으로 슬퍼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잃어가면서 나아가야 하나.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고 또 바란다.
전은주·조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