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도 ‘가스라이팅(gas lighting)’은 생소한 단어였다. 그러나 과거 연인이었던 배우 간의 가스라이팅 논란과 더불어, 계곡 살인 사건의 피의자가 8년간 피해자를 가스라이팅 해왔던 정황이 밝혀지며, 이제는 익숙한 용어로 자리 잡았다. 이는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를 뜻한다. 해당 단어는 1938년 작가 패트릭 해밀턴이 연출한 연극 ‘가스등(Gas Light)’에서 처음 유래되었다.
영화는 한 부부의 관계를 그려내는데, 남편인 그레고리는 아내인 폴라가 홀로 제대로 된 사고나 판단을 할 수 없도록 몰래 물건을 숨기며 건망증 환자로 몰아간다. 이후에 폴라가 가스등이 자꾸 깜빡거린다고 호소하자, 오히려 그가 직접 본 것을 환각으로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그레고리는 진실을 존재하지도 않는 거짓인 것 마냥 꾸며내어, 결국에는 폴라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그레고리에게 온전히 의지하게 만든다.
폴라처럼 대개 피해자는 본인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그들을 ‘위한다’라는 명목으로 행해지기에 폭력의 일종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충고를 가장하여 행해지는 특성 탓에, 이 둘 사이의 차이를 구별 짓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가스라이팅은 상대의 사고방식 자체를 변화시키기 위해 아주 지속적인 요구를 한다는 차이가 있다.” 오은영 정신건강 의학과의사는 둘 간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 짓기는 어렵지만, 충고와는 명백히 다른 개념이라고 전했다.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는 가스라이팅 자가진단으로써 6가지 항목을 제시한다. ▲왠지 몰라도 결국 항상 그 사람 방식대로 일이 진행된다 ▲그 사람에게 “너는 너무 예민해”, “이게 네가 무시당하는 이유야.”, “비난받아도 참아야지.”, “나는 그런 이야기 한 적 없어. 너 혼자 상상한 것이겠지.” 등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변명한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 잘못한 일이 없는지 점검하게 된다 ▲그 사람이 윽박지를까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를 알기 전보다 자신감이 없어지고 삶을 즐기지 못하게 됐다. 연구소에 따르면, 이 중 한 가지라도 해당이 되는 관계가 있을 시 가스라이팅을 의심해봐야 한다.
가스라이팅은 가족이나 연인, 친구 사이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이는 일상 속 대화를 통해 일어나기에 본인도 모르는 사이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더불어 나도 모르게 충고를 가장해 주변인을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었던 적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언제든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음과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건강한 관계를 이어 나가고자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