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vs 우크라이나
러시아 vs 우크라이나
  • 정주희 기자
  • 승인 2022.03.0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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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얘기로 세계가 떠들썩하다. 2021년 10월부터 러시아가 러시아군 약 130,000명을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집결시키고 우크라이나도 전쟁 준비를 하는 등 전쟁에 대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전쟁을 하는 이유를 알아보자. / 사회부

  우크라이나는 유럽 동부와 러시아 사이에 있는 동유럽 국가로 유럽에서 가장 큰 영토와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다. 우크라이나의 수도는 키예프이며 대다수 국민이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믿는다. 소련에 속해있던 국가 중 러시아 다음으로 지정학적이나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가다. 특히 흑토지대라서 매우 비옥한 땅을 보유하고 있어 식량 공급에도 유리했다. 또, 동쪽에는 공업지대가 있어 광물 자원이 매우 풍부하다.

 


● 키예프 공국에서부터 시작된 인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동슬라브 민족이 세운 최초의 나라인 키예프 공국에서 시작된다. 당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키예프 공국으로써 같은 동슬라브어 계통의 언어를 쓰고 정교회를 믿었다. 그러나 키예프 공국은 체계적인 국가 시스템이 잡혀있지 않았고 계승권 문제로 내부적인 문제에 계속 시달렸다. 십자군 전쟁 이후 키예프 공국은 힘을 잃었고 13세기 몽골제국의 침략으로 인해 멸망했다.

  1236년, 리투아니아인은 몽골인과 킵차크인들의 우크라이나 지역관리 소홀을 틈타 키예프 공국의 대부분을 해방하며 영토를 확장했다. 이후 루테이나 전역을 비롯해 현 우크라이나 지역을 흡수하고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되었다. 15세기부터 리투아니아는 루테이나 침입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래서 루테이나를 방어하기 위해 루블린 조약을 맺으며 폴란드 왕국과 연방을 이뤘다. 루블린 조약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영토 중앙부 지역은 반강제적으로 폴란드 왕국에 양도됐다.

  이렇게 우크라이나는 1569년부터 1654년까지 리투아니아와 폴란드가 세운 복합 군주제 국가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지배를 받게 됐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합병 이후 우크라이나인들을 차별하기 시작했다. 농민의 토지 소유와 도시민들의 곡물 교육이 금지되며 우크라이나인의 종교인 정교회를 차별하고 가톨릭으로 반강제 개종시켰다. 이뿐만 아니라 계급, 경제, 인종, 종교 등 여러 방면에서 차별이 행해졌다.

  러시아는 키예프 공국 멸망 후 갈라진 제후국 중 상대적으로 춥고 열악한 북동쪽의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의 모스크바 지방에서 출발해 동유럽 여러 나라를 통일해 확장하며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를 모스크바 대공국이라고 부르는데 모스크바 대공국은 현대 러시아의 기초를 이룬 국가다. 이후 대공의 명칭을 차르로 바꾸고 통합적인 국가의 모습을 갖추며 중앙집권 성격을 가진 루스 차르국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제4대 차르였던 표트르 대제가 즉위 직후 활발한 서구화, 근대화 정책으로 제국의 기틀을 놓으면서 1721년, 전제군주제 국가인 러시아 제국이 시작됐다.

  이렇듯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키예프 공국 멸망 이후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우크라이나는 서방 문화에 쉽게 노출되는 환경이었다. 이로 인해 종교와 정치,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서방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서구 지향적 성향을 갖게 되었다. 반면에 러시아는 힘을 키워 국가의 기틀을 잡아갔다.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끈질긴 악연

  16세기 중반, 우크라이나의 지도자였던 보르단 흐멜니츠키는 루스 차르국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침공해달라고 부탁했다. 루스 차르국은 침공에 성공해 우크라이나 영토를 절반으로 쪼개 드네프르강을 경계로 서쪽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동쪽은 러시아가 차지하기로 했다.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멸망하고 페레야 슬라프 조약이 성립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제국은 병합된다.

  러시아 제국은 1917년에 발발한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무너지게 되고 1922년, 인류 역사상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하 소련)이 세워졌다. 소련이 건국된 이후 1932년, 우크라이나에 대기근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스탈린은 우크라이나 지역을 봉쇄했다. 식량을 구할 수 없었던 약 300만 명 이상의 우크라이나인들은 아사하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인의 러시아에 대한 반발은 더욱 커지고 민족주의적 감정은 크게 발발하게 됐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산주의를 비롯한 소련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1985년, 고르바초프가 취임하면서 페레스트로이카라는 개혁 정책을 펼쳤다. 페레스트로이카 개혁 정책은 부패한 관료제를 타파하고 공산주의 경제의 한계점을 알고 시장자유화를 추진하는 등 정치·경제적인 개조를 말한다. 그런데도 소련은 점점 쇠퇴하다가 1991년 소련이 붕괴하였다. 이때, 우크라이나는 독립하게 되었다. 독립 이후, 구소련 국가 중 가장 역동적인 정치 행보를 이어왔으며 정치 성향 또한 친서방 세력파와 친러시아 세력파로 나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소련 해체 이후 외교 관계를 맺어왔다. 2010년 우크라이나에 친러시아 성향의 야누코비치 정권이 들어서며 잠시 관계가 우호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2013년, 야누코비치의 친러시아 정책에 반대하며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결국 야누코비치가 탄핵당하며 정권이 교체됐다. 친서방 정권은 소련 및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가했고 결국 러시아와의 관계가 크게 악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4년, 우크라이나의 영토였던 크림반도가 크림반도 자체 투표를 통해 러시아로 다시 편입됐다. 그리고 2014년 4월부터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 성향의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 사이에서 전쟁이 발발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계속되는 대립 속 우크라이나는 사회주의 국가의 동맹 강화를 위해 설립된 기구인 바르샤바조약기구를 탈퇴하고 소련에 대한 집단 안전 보장을 위해 설립된 기구인 북대서양조약기구(이하 NATO)를 가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NATO를 가입하면 러시아 국가 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땅이었을 때, 러시아는 유럽으로 천연가스를 수출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관통하는 송유관을 깔았다. 만약 우크라이나 NATO 가입 이후 가스관 밸브를 차단한다면 자원 수출 주도형인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에 경제 위기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2021년 10월, 러시아가 러시아군 약 130,000명을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집결시켜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러시아는 예비군 수만 명을 소집하는 등 이례적인 병력 집결을 보여주며 긴장을 높였다. 이에 우크라이나도 군대를 소집해 국경에 배치해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2년 1월 말, 양측간의 대립과 긴장이 최고조 상태가 되었다. 유럽 각국과 NATO, 미군이 병력을 배치하며 상황의 심각성이 높아졌다. 결국, 2022년 2월 22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승인하고 미국과 유럽은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에 대해 최대급의 경제 제재를 발표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 평화유지군 파병을 선언하며 전쟁이 시작되기 일보 직전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러시아의 조치에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며 경고했다. 우크라이나는 국가 전역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예비군을 징집했다. 만약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난다면 수출 주도형인 우리나라는 경제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전쟁은 수많은 사상자와 피해자를 낳고 경제 위기를 불러온다. 문화시민으로서 전쟁이 아닌 대화와 협의로 해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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