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태우와 전두환, 그들이 남긴 것
[사설] 노태우와 전두환, 그들이 남긴 것
  • 언론출판원
  • 승인 2021.12.0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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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난 26일 서거했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전두환 씨도 별세했다. 이 범상치 않아 보이는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 여러 얘기가 오간다. 인간 누구에게나 공평한 죽음 앞에서 우리 인간은 오랜 세월 권력과 탐욕을 위해 많은 것을 얻은 듯 살아가지만 지나고 보면 잃은 게 더 많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여하튼 우리 현대사에 몇 페이지를 장식할 그들의 행태와 집권과 죽음을 접하는 우리 마음이 가볍지 않은 소식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2·12 쿠데타 당시에 자신이 맡고 있던 9사단 병력을 중앙청으로 출동시켜 당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 겸 보안사령관이 주도하는 신군부의 권력 장악 과정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후 5공 하에서 노태우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의 지원 하에 당시 여당이던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 그는 직선제 개헌 약속 등을 핵심으로 하는 전격적인 6·29 선언으로 분열된 김영삼·김대중을 이기면서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취임 이후 ‘5공 청산’이라는 국민적 열망 하에 두 사람의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전두환에 대한 구속 요구가 강해지자  전 씨는 모든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백담사로 향했다.

  이후 김영삼 정부가 집권하자, 노태우와 전두환은 12·12 쿠데타와 비자금 사건 등으로 나란히 구속돼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1997년 대법원에서 전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을, 노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의 중형을 각각 선고받은 뒤 같은 해 12월 특별 사면으로 풀려났다.

  육사 11기 동기로서 12·12 군사 반란을 함께한 노태우와 전두환, 그들은 한 달 새에 함께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군 내 사조직 ‘하나회’를 만들고 군인으로서 출세가도를 같이 달렸다. 이후 그들은 정권 찬탈을 위한 ‘12·12 군사 반란’을 같이 도모하며, 군사 반란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은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을 유혈 진압했다. ‘광주 사태’에 노태우의 역할이 어떠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간접적으로나마 ‘광주 비극’에 대해 사죄했다. 그리고 비자금도 거의 다 갚았다. 전두환 그는 ‘광주 비극’에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고, 약 9백억의 비자금을 갚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평가는 역사의 몫이지만, 우리는 두 눈 부릅뜨고 깨어있어야 한다. 아직도 ‘광주민주화 운동’을 북한군 소행이라고 믿는 세력들이 득실대는 세상이기에. 또 이러한 비극은 결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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