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대학교의 구성원이 된 지 3개월이 지났다. 매일 아침 연구실 문 앞에서 ‘노보람 교수 연구실’이라고 적힌 명패를 올려다본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은 후 줄곧 바라왔던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아직도 어딘가 어색하고 민망한 마음이 몰려온다. 그러면서 입 가장자리가 살포시 올라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연구실 창밖으로 마산의 푸른 바다가 보인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푸른 바다를 보면 긴장한 상태로 시범 강의를 하러 왔을 때가 생각난다. 이제 그 마산 바다를 매일 볼 수 있어서 정말 좋다.
초보 교수자인 나에게 수업, 연구, 학생지도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숙련된 교수자가 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출석부를 펼쳐 학생들 이름을 보며 얼굴들을 떠올려 본다. 대면 수업을 시작한 지도 한 달째, 선명하게 그려지는 얼굴도 있고 아직 어렴풋한 얼굴도 있다. 나의 기억력과 무심함을 탓해본다.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에 이름과 관련해 이런 표현이 나왔다. 이름 명(名)의 어원은 저녁과 입인데, 부모가 어스름한 저녁에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안위를 챙긴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챙기기 위해 지어준 이름이기 때문에, 나도 ‘학생들’이 아니라 소중한 딸과 아들로, 개개인으로 대하려고 노력한다.
수업도 수업이지만 학생지도는 여태까지 해본 적 없는 가장 도전적인 일인 것 같다. 학생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가 고민이다. 물론, 나도 설익은 충고는 하지 말고, 잘 들어주자는 원칙이 있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싶은데, 나와 마주 앉은 학생 간에 정적이 흐르기 일쑤다. 아무래도 적극적 경청은 먼저 나를 열어 보이고, 관계를 맺은 이후 가능할 것 같다.
4학년 학생들과는 취업 이야기를 주로 한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은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이런 불확실성이 긴장과 불안을 유발한다. 힘들어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얼마 전까지 고민하던 내 모습이 보인다. 나 역시 취업 준비생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을 겪었다. 축하받으며 졸업했지만, 마침표는 곧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졌다. 무엇 하나 정해진 것 없는 취업 준비 기간이 나에게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힘든 시간이었다고, 학생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이 말은 배우 김혜자의 입을 빌려 과거의 나에게 그리고 학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노보람(유아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