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회 10·18문학상 현상 공모- 시 '화개리 17-80번지'
제35회 10·18문학상 현상 공모- 시 '화개리 17-80번지'
  • 정주희 기자
  • 승인 2021.12.01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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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당선: 송우영(국어교육과·3)

화개리 17-80번지

1

나를 여닫으셨다. 오늘도.

나 여기 있어요. 할머니.

하는 외침은 깃발이었나 보다.

문이 닫히고, 다시.

나무 파도가 이따금씩 모든 걸 적셨다.


2

7번째 배고픈 사람이 되었다.

니는 하루 종일 굶나?

효소는 걱정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아뇨, 아까 저랑 같이 식사하셨어요.

더부룩한 마음은 쉽게 뱉어지지 않는다.


3.

선명한 할머니를 적을 수 없다.

아스팔트로 눅눅해진 종이 때문에

221번 버스와 세발자전거,

배 밭과 코스모스 잔상 따위가 번졌다.

 


<국토해양부 고시>

--- 정촌면 화개리는 ○○-○○간 고속도로 공사 대상 지역임을 고시 ---

 

 

4.

두량못에 가자,

거기가 참 살기 좋았는데

하는 말씀에

남해고속도로 한 켠으로

동네 산보를 갔다 오자고,

어디다 뒀는지 잊어버린 물건 같은 약속을 한다.

찾으러 가야 하는데, 다시.

 

 

10·18문학상 시 심사평

  이번 10·18문학상 시 부문에는 예년과 비슷한 응모 작품 수가 투고됐다. 그러나 투고된 시의 경향에 새로운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기존 의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현대시와 다른, 이른바 MZ세대의 정체성과 의식을 반영한 시가 등장했다. 고무적이고 긍정적인 현상이라 느꼈다.

  그 특징은 시의 형식을 파괴하고 자유로운 의식으로 자신들의 시를 풀어나갔다. 고루한 설명이 아닌 마치 랩이나 힙합을 듣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시가 되기 위해서는 시로 전달하려는 주제가 선명해야 한다.

  최종작품으로 ‘꽃’ ‘모노크롬 페인팅’ ‘화개리 17-80’ 등 3편이 남았다. ‘꽃’은 유채와 벚꽃의 화려함을 10행의 비교적 짧은 시로 노래 했지만 그만큼 단단했다. ‘모노크롬 페인팅’은 시의 뼈대가 탄탄했다. ‘올라오지 못하는 바다를 꺼내/근육을 덧칠하는 모래성’ 같은 표현은 투고 학생의 오랜 습작의 시간을 보낸 결과물로 읽혔다. ‘화개리 17-80’은 할머니에 대한 기록이며, 시의 형식을 자유롭게 기술했지만 긴 호흡으로 서사를 만들어나갔다.

  이 중에서 ‘화개리 17-80’을 당선으로, ‘모노크롬 페인팅’, ‘꽃’을 가작으로 선정했다. 어떤 작품을 당선으로 뽑아도 좋았지만, 가능성이 있는 시의 손을 들어주었다. 입상자 모두에게 축하를 보낸다. 부마항쟁 42주년이 지났다. 10·18문학상을 통해 월영캠퍼스의 새로운 시인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

정일근(시인·석좌교수)

 

10·18문학상 시 당선 소감

  스물, 그 언저리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마주하기 위해서 글을 썼고, 그다음에는
저와 타인을 함께 보기 위해서 글을 썼습니다. 글 덕분에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글 덕분에 ‘어른’이란 단어와 ‘사회’라는 단어가 조금은 어색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올해, 봄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은 쌀쌀했던 그즈음 시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써보는 시였지만, 많은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저의 시를 피워낼 수 있었고, 10·18문학상과 같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분들 덕분에 쓰기가 제 마음속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 있는 의미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저는 미숙하기만 했던 저를, 이런 의미 있는 자리에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글을 통해 주변에 대한 관찰과 세상에 대한 고민을 풀어가는 자세를 놓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려고 합니다. 이번 문학상에서의 기억은 제가 앞으로의 이런 각오를 실천하면서 크나큰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일곱 살까지 손자를 손수 키워내셨던, 항상 사랑으로 손주를 맞아주셨던, 그리고 오늘도 기억을 잃어가는 병 속에서 저를 가장 먼저 기억해 주시는 할머니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전합니다.

송우영(국어교육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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