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한다. 여전히 모이는 것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조금만 참으면 나아지겠지’, ‘다음 학기는 캠퍼스에서 만나서 활동할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은 이번 학기도 어그러졌다. 개강은 했지만 학교는 썰렁하다. 학생들의 웃음과 학업에 대한 열기가 넘쳐야 할 강의실도 비어 있고, 도서관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감사하게도 교수들의 연구실만은 늦은 밤까지 불을 밝히고 있고, 연구와 지도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모니터로 교수와 소통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어떨까? 무엇보다 그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학생들은 인생의 가장 의미 있는 청년시기를 어떻게 꾸려야 할지 고민할 것이다. 그나마 SNS 발달로 교수와 소통할 수 있어 도움을 받겠지만 팬데믹 시대의 환경은 여유롭지가 않다. 미래를 설계하고 활동하는 것은 오롯이 혼자의 몫이다.
학생들은 성공한 사례를 찾아 벤처마킹 해보기도 하고, 잘 할 수 있는 재능을 찾아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러다가 열정을 가지고 자기 생활에 충실하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하고 권태를 느끼며 고민에 휩싸이는 학생들도 많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껏 처해 보지 못한 환경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다들 실존적 공허를 경험한다. 외로움이 밀려드는 순간이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자체가 쓸쓸할 뿐이다. 긴장이 없는 상태가 이어지다 보면 자칫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종잡을 수가 없고 공허감이 밀려온다. 이때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은 시련 속에서도 어떤 의미를 발견하라고 권한다.
우리도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와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지금, 앞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이 살아야 할 의미를 주는 ‘그 무엇’을 발견하자. 우리는 ‘그 무엇’을 위해 살 수 있는 존재이다. 사는 이유가 되는 ‘어떤 것’과 ‘어떤 사람’을 찾아 나가는 시간이 바로 코로나19 때임을 떠올리자.
조성숙(의사소통교육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