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금목서가 있는 풍경
[정일근의 발밤발밤] 금목서가 있는 풍경
  • 언론출판원
  • 승인 2021.11.0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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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은 11월까지 꽃향기를 맡을 수 있는 따듯한 남쪽 항구 도시여서 좋다. 요즘 우리 곁에 머무는 꽃향기의 대표적인 꽃이 국화다. 지금 ‘해양신도시’(인공섬)에서 열리고 있는 ‘마산국화축제’는 마산과 주민에게 꽃과 향기를 선물해주고 있다. 11월의 국화 향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를 담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국화축제 동안 창동, 오동동 등 마산 구도심 길가 곳곳에 국화 화분이 놓인다. 바야흐로 마산 도심이 그윽한 국화 향기에 풍덩 빠지는 시간, 마산에 ‘국화의 바다’가 펼쳐진다. 그래서인지 서항 부두에서 만나는 갈매기 소리가 높고 맑다.

  11월에 마산에서 만나는 또 다른 꽃에 금목서가 있다. 금목서는 꽃이 귀한 이 계절에 유난히 깊은 꽃향기를 나눠주는 귀한 나무다. 오래도록 그 향기 잊고 살았는데 내 사는 동네에서 인연인 듯 금목서를 만났다. 지난 2월, 고향 가까이 돌아와 오동서16길이란 도로명 주소를 가진 제법 큰 골목 가에 남향 거처를 마련했다, 거처의 법정동은 중성동이고 행정동은 오동동에 속한다.

  새집에서 창동, 어시장이 가까워 산책을 즐기는 내게는 청복(淸福)이다. 얼마 전 가까이 있는 창동에 나갔다가 밤이 깊어 돌아오다 금목서꽃과 향기를 만났다. 골목 어귀를 지나는데 은은한 꽃향기가 와락 밀려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꽃향기에 대한 기시감에 주변 화단에서 정체를 찾아보니 금목서였다. 오렌지색에 가까운 꽃을 총총하게 단 금목서가 서 있었다. 날이 밝아 다시 찾아가 일곱 그루의 금목서가 꽃을 피운 사실을 확인하고 행복했다.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목서(木犀)라는 나무들이 있다. 금목서, 은목서, 홍목서가 있다. 여기서 ‘서(犀)’는 코뿔소를 뜻하며, 나무가 코뿔소를 닮았다는 말이다. 이 나무에서 피는 꽃은 깨알처럼 작은 것이 무리 지어 수북하게 맺힌다. 그러나 작은 꽃답지 않게 향이 짙은 것이 나무의 특색이다.

  봄에 꽃피는 서향(瑞香) 나무는 천리향이라 하고, 목서 나무들의 꽃은 만리향이라 부른다. 서향은 팥꽃나뭇과의 상록 관목이며 목서는 물푸레나뭇과의 꽃나무이다. 봄에 맡는 서향의 향기는 강하지만 초겨울 무렵에 맡는 목서의 향기는 은은하다. 비교하자면 봄에 강한 꽃향기를 가진 서향 아가씨가 가을의 끝 무렵 성숙한 금목서 여인의 모습으로 찾아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 마산 인근 고성고등학교 금목서가 생각났다. 후배가 그 학교에서 근무해 오래전 금목서 이야기를 들었다. 서둘러 30여 그루 금목서의 꽃이 만개한 고성고 교정을 찾았다. 교정엔 온통 꽃향기뿐이었다. 향기는 시의 향기와 사람의 향기를 닮았다. 마치 지금은 계시지 않는 스승이 찾아오신 것처럼.
그날 동행한 후배들과 나는 한 스승의 제자다. 나는 후배들과 나란히 서서 스승의 말씀을 듣는 것처럼 꽃향기가 만들어주는 마술에 빠져 있었다. 언제 내 마당을 가지면 꼭 금목서는 심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석좌교수, 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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