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무덤, 아프가니스탄
제국의 무덤, 아프가니스탄
  • 정지인 기자
  • 승인 2021.09.0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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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철수와 아프가니스탄의 항복, 탈레반의 정권 장악

 

  현재 아프가니스탄은 국제 사회에서 논쟁의 중심에 있다. 미군 철수 이후 3개월 만에 무장 이슬람 정치 단체인 탈레반이 판지시르 지역을제외한 아프가니스탄 전 지역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 건 2001년 11월 3일 미군과 아프가니스탄 정부 연합군에 의해 밀려난 이후로 20년 만이다. 또다시 탈레반에게 장악된 아프가니스탄은 현재 여러 논란에 휩싸여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논란에 대해 알아보자. / 사회부

  지난 5월부터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포함한 외국군 철수가 시작되며 탈레반이 무섭게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를 우려한 주민과 민병대들은 곳곳에서 탈레반과 국지적인 전투를 치렀다. 그러나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공식적으로 항복을 선언하고 말았다. 2001년부터 20년 동안 이어지던 최장기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의 패배, 탈레반의 승리로 끝났다. 강대국이었던 미국의 패배와 여러 논란이 많던 탈레반의 승리는 국제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 끊임없는 전쟁 속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은 인도,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세 지역의 지리적 요충지에 위치한 나라다. 동서양의 길목에 위치해 여러 문화를 접하다 보니 민족 구성이 다양한 편이다. 그러나 지리적 특성상 여러 나라의 침략으로 18세기 중반에 겨우 첫 민족 국가 두라니 왕조가 들어섰다. 이 기쁨도 잠시, 두라니 왕조는 사후 부족 간의 통합에 실패해 분열되어 멸망했다.

  이후, 바라크자이족 출신이 왕위에 오르며 바라크자이 왕조를 건설했다. 왕조를 건국한 지 얼마 안 된 시점부터 영국과 세 차례 전쟁을 겪었다. 1차와 2차 전쟁 둘 다 패배하며 영국의 보호령이 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벌어진 3차 전쟁에서 결국 승리해 독립을 이뤄냈다. 독립 후 50년간 정치·경제적으로 평화를 누렸지만, 내부에서는 민족 간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여러 분파로 나누어졌다.

  1973년, 6대 왕의 사촌인 모하마드 다우드 칸으로 인해 왕정이 무너지고 공산주의 국가인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이 들어섰다. 다우드 칸은 장기 독재를 위해 자국 내 다른 세력을 탄압했다. 권위주의적인 독재 정치는 국내의 불만을 키워 내전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후, 소련의 공산주의 이념을 지지하던 군인들의 쿠데타로 인해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은 5년 만에 멸망했다.

  1978년 4월 13일, 인민민주당의 지도자가 대통령에 취임하며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수립을 선포해 친 소련 공산 국가로 나아갔다. 그러나 전형적인 소련식 공산주의 개혁 정책으로 인해 대중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또,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주의 이념은 이슬람 문화권이던 아프가니스탄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나지불라 정부군에 저항하기 위해 ‘무자헤딘’이라는 이름의 반란군이 봉기해 다시 내전이 발발했다.

  이런 상황은 소련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며 무자헤딘과 소련의 전쟁이 시작됐다. 전쟁은 불안을 극에 달하게 했다. 1989년 2월에 소련군 철수, 1991년에 소련이 해체되면서 10년간의 전쟁이 끝났다. 이후, 무자헤딘 수장을 중심으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국이 세워졌다. 그러나 긴 전쟁은 무자헤딘의 변질을 불러왔고, 이로 인해 또다시 내전이 벌어졌다. 이때, 내전 종식과 나라 안정을 목적으로 탈레반이 등장했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지친 민중은 탈레반을 지지했고, 1996년 라바니 정권을 무너뜨린 후 공식 정부가 된다. 그러나 집권한 탈레반의 극악무도한 정치로 민심은 등을 돌렸다.

 

 ■ 20년 만에 다시 정권을 장악한 탈레반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에 있는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테러로 인해 무너졌다. 9.11테러는 미국 역사에서 유례없는 대형 참사였다. 테러의 배후에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가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가 나왔다. 미국은 탈레반에게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요원 송환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2001년 10월 7일,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이 시작됐다. 전쟁 시작 두 달 만에 탈레반 중심지 칸다하르까지 함락됐고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미국은 전쟁 이후 친미 성향의 정부 유지를 위해 많은 예산을 쏟아부었다. 20년간 한화로 2천 229조 원에 버금가는 금액이다. 그러나 오랜 전쟁과 내전으로 부패한 정부와 정치인들로 인해 막대한 비용에 비해 변화가 없었다. 그러자 미국은 2020년 탈레반과 평화 협정을 맺으며 서서히 미군 철수를 진행했다. 지난 4월 공식적으로 모든 병력 철수를 발표했고,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장악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자 가니 전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외로 도피했다. 도피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현금을 챙겨 떠났다는 횡령 의혹까지 생기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정부를 믿고 있던 국민은 대통령이 도피하고, 수도까지 점령당하자 불안감에 휩싸이며 국외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탈출을 위해 이륙하는 미 공군기에 매달렸다 추락하는 사람들의 영상이 SNS상에 퍼지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탈레반은 1994년 아프가니스탄에서 결성된 무장 이슬람 정치 단체다. 1996~2001년까지 6년간 집권 당시 이슬람근본주의 및 율법을 토대로 인권유린에 가까운 정책을 펼쳤다. 먼저 대중매체, 타종교, 대중문화. 가치관, 인권, 복식, 해외여행 등 모든 자유를 금지시켰다. 또, 여성은 무조건 전신을 가리는 복장인 ‘부르카’만 착용해야 했고 남자 가족과 동행하지 않으면 혼자 외출이 금지됐다. 더불어 여성의 근로권과 복장 자유권, 의료권, 교육권, 법률권 등 기본적인 권리 박탈, 탈레반 조직원들과 강제 결혼 등 여성 인권을 철저히 억압시켰다.

  탈레반은 지난 17일 아프가니스탄 장악 후 첫 기자회견에서 변화를 예고했다. 이날 탈레반 대변인 자비훌라 무자히드는 “이슬람법의 틀 안에서 여성의 권리를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예고했음에도 현지인들의 상황은 달랐다. 거리에는 여성이 사라졌고 부르카를 미착용한 여성은 총살을 당했다. 청바지 차림은 이슬람 복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매질을 당한 청년들도 있었다. 또, 여성들이 등장한 광고를 지우고 탈레반 무장전사와 강제로결혼시킬 여성들 명단을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제사회에서는 비판을 피하고자 지키지 않을 약속을 한 것이 아니냐는우려가 나왔다.

 

 인간이라면 권리를 누릴 의무가 있다. 누구에게도 권리를 억압할 자격은 없다. 그러나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인권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탈레반이 주춤했던 2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여성들은 다시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고, 최초의 여성 부총리가 탄생했다. 다시 탈레반이 집권하게 되었지만, 국민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집권 반대 운동을 위해 거리로 나가는 등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20년간 누구보다 힘들게 쟁취한 삶을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길 소망한다.

정주희 기자 universej78@daum.net, 정지인 기자 jji252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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