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쪽빛 바다를 만나러 산으로 갑니다
[정일근의 발밤발밤] 쪽빛 바다를 만나러 산으로 갑니다
  • 언론출판원
  • 승인 2021.05.0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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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들어 하늘이 너무 푸릅니다. 그냥 그대로 그 속으로 뛰어들고 싶어집니다. 그 색이 쪽빛입니다.

  마음을 씻는 쪽빛 바다를 찾아 산으로 갑니다. 산에 무슨 바다가 있느냐고 웃으시겠지만 내가 찾아가는 바다는 고성 천왕산 안국사 대안 스님의 쪽빛 속에 출렁이는 화엄의 바다입니다.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안국사 대안 스님의 쪽빛을 찾아가는 길은 산에서 바다를 만나고 바다에서 다시 산을 만나는, 그 두 가지의 즐거움을 모두 얻는 ‘이요(二樂)’의 길입니다.

  안국사가 부처를 모신 도량이라면 나무와 꽃들을 모신 자연은 이름 그대로 자연 도량입니다. 자연 도량에서는 나무도 부처고 꽃도 부처입니다. 그 도량에 ‘쪽’부처도 있습니다.

  쪽은 봄에 묘판에 씨를 뿌려 모종을 만들고 그 모종을 밭으로 다시 옮겨 키웁니다. 여름에 잎이 무성해지면 쪽풀을 베어서 옹기나 나무통에 넣고 물을 넣어 여름 햇살에 삭힙니다.

  완전히 삭은 후 쪽풀을 건져내면 쪽물이 남습니다. 쪽물에 잿물을 섞어 발효를 시키면 쪽물 염액이 됩니다. 그 염액에 천을 넣어 쪽물을 들입니다.

  쪽물 염액을 만드는 일도 힘든 일이지만 쪽물을 들이는 일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물들이고 말리는 일이 여름 뙤약볕 아래 쉬지 않고 계속되어야 우리나라 동쪽 바다 빛 같은 쪽빛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대안 스님이 쪽물을 들이는 고된 울력을 지켜보면서 나는 쪽빛이 쪽풀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빛깔은 스님의 손에서 나오는 빛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전통 빛깔이었던 쪽빛은 한때 사라진 빛깔이었습니다. 손쉬운 화학 염료가 나오면서 손이 힘들고 바빠야 얻을 수 있는 쪽빛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빛깔을 대안 스님이 푸르게 지켜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속에서는 쪽빛이 값비싼 빛깔이고 쪽물을 들이는 일은 공개하지 않는 비법이지만 안국사의 쪽빛은 누구나 쉽게 물들일 수 있는 빛깔입니다.

  안국사는 귀한 쪽빛을 힘들게 재현했지만, 욕심 없이 그 빛깔을 원하는 모두에게 나눠주고 있습니다. 손은 쥐면 사람의 욕심이 되고 펼치면 부처의 자비가 됩니다. 안국사는 쪽빛을 쥔 손을 활짝 펼쳤습니다.

  부처는 색심불이(色心不二)라고 가르쳤습니다. 색은 몸이며 심은 마음인데 그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입니다. 안국사는 쪽빛을 나눠주었기에 쪽빛은 빛깔이면서 마음이 되었습니다. 쪽빛 그대로 부처님 말씀이 된 것입니다.

  나는 둘이면서 둘이 아니고 둘이 아니면서 둘인 이이불이(二而不二) 불이이이(不二而二)의 쪽빛 바다에 섰습니다. 저 쪽빛 위에 그대에게 길고 긴 편지를 쓰고 싶어집니다.

석좌교수·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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