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월영지를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월영지는 편집국장만 쓸 수 있어서 특별해 보였다. 객관적으로 써야 하는 기사와 달리 월영지에는 내 개인적인 생각을 추가할 수 있다. 약 2년 동안 학보사를 하면서 많은 학보를 발간했다. 발간 전 교열을 위해 1면부터 9면까지 읽을 때마다 월영지를 보며 “내가 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가졌다. 국장이 되어 월영지를 쓰고 싶은 마음과 국장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마음이 계속 번갈아 가며 들었다.
학보사를 들어오기 전 수많은 고민을 했다. 같은 과 동기에게 “같이 들어갈래?” 라고 물어보니 이미 자신은 수습 기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에 힘입어 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친구와 함께라면 힘들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내 학보사 생활은 어느 새 국장이라는 큰 자리까지 맡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 부반장이나 방송부장을 맡아본 적은 있었지만, 물질적인 보상 없는 순수한 내 의지였다. 그래서 실수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학보사는 활동비를 받고 일하는 대학언론기구이기 때문에 실수는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실수가 잦고 덤벙대는 나에게 국장 직책은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약 2년의 학보사 기자 생활 동안 2명의 국장을 거쳤다. 먼저 내가 수습기자, 정기자일 때 국장이었던 A 선배는 포근함과 엄격함 둘 다 지닌 분이었다. 기자들을 이끄는 리더십도 있었고 무슨 일이든 척척 해냈다. 학보사에서는 엄격하지만 든든한 국장이었다. 그러나 사적으로 만날 때는 웃는 얼굴이 예쁘고 가끔은 기댈 수 있는 포근한 선배였다. 상반되는 성격인 엄격함과 포근함 둘 다 가지고 있기에는 쉽지 않지만, A 선배는 둘 다 가지고 있었다.
A 선배 이후 B 선배가 국장이 되었다. B 선배는 한없이 착하고 쓴소리 못 하는 사람이라 사실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B 선배는 자신의 장점인 성실함을 극대화해 기자 들이 하지 않으면 직접 발로 뛰었다. B 선배가 국장일 때 학보사에 여러 일이 있었고 힘들어하는 기자들도 많았다. B 선배는 국장으로서 다 감싸고 달래 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내가 정말 믿고 따랐던 A 선배와 B 선배가 잘 이끌어 온 학보사를 내가 망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끊임없이 들었다. 내가 되고 싶은 국장은 뭐든 척척 잘 해내고 가끔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국장이다. 그런 국장이 될 수 있을지 벌써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나 학보사라는 뜻깊고 잊지 못할 기억 덕분에 먼 훗날 도움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기소개서에 한 줄 채울 용도뿐만이 아니다. 미래의 내가 볼 때 과거의 나는 국장이 되기 전 두려움과 불안감을 안고 있었지만 결국 이겨냈다는 자신감도 함께 얻을 것이다. 그래서 뭔가 시작하려 할 때 이 자신감으로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으로 바뀔 내가 벌써 기대된다. 아직은 나를 ‘국장님’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어색하고 낯설다. 언젠가 국장님이라는 소리가 익숙해질 때쯤 내가 바랬던 국장의 모습이 되어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