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농촌 마을인 경북 기계면 내단리에는 어릴 적 기억과 추억이 잠자고 있다. 달 밝은 밤이면 야산 바위 앞에서 흰 소복 차림의 여인네들이 기도를 올리곤 하였다. 친구들과 두려움에 떨면서도 그 모습을 훔쳐보았고, 촛불과 부적 등이 신기하였다. 그리고 늦은 밤 간절히 빌던 그 여인네는 ‘무엇을 기도하였을까’ 궁금하였다. 야산 풍화된 바위, 바위에 걸친 채 흘러내린 새끼줄, 일렁이는 촛불, 작은 바람에도 사각대며 울어대는 대나무 잎, 또 마을 어귀에 서 있던 장승과 솟대는 하늘에 닿은 듯 어찌나 높고 커 보였는지…
이젤 앞에서 살고, 이젤 앞에서 죽으리라던 10대의 각오는 1980년, 모교와 함께한 20대는 더욱 치열하였다. 몰아쉬는 내 숨소리조차 무서우리만큼 날이 서 있었다. 만지면 금세라도 바스러져 내릴 것 같은 깡마른 체구로 오로지 그림으로만 지어진 세상에서 존재하였다. 창작 생활이란 스스로 꽃을 피우는 과정임을 체득하며 낮과 밤을 바쳤고 새벽 표정을 가슴에 담았다. 그때에는 <인간+자연>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연작하였다. 어린 날 몰래 훔쳐 본 민간신앙의 기억과 추억에서 걸러 낸 거대한 바위와 붉은 천에 오른 정한수, 흘러내린 금줄, 비쩍 말라비틀어진 북고, 빛바랜 부적, 다 타버린 초의 흔적 등은 삶의 밑바닥에 엎드려 가냘프게 울리는 기도 소리였다. 단순히 서낭당 어디쯤에서 보았을 법한 풍경이지만 절대적 존재인 자연 앞에서 강한 염원을 드러내는 인간의 삶에 대한 경건함과 진지함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내키지 않았으나 시간은 그토록 숨 가삐 흩날리는 나뭇잎 마냥 어지러이 지나갔다.
직장을 찾아 경북 안동에 터를 잡은 지 벌써 삼십 년이 훌쩍 지났다. 이 곳은 추운 날씨 탓인지 옛 선비의 고장이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유난히 소나무가 많다. 소나무는 폭풍한설에도 억척스럽게 견디며 푸르름을 잃지 않고, 흙 한줌 없는 바위틈에서도 뿌리를 내리는 강인함은 장중하다 못해 엄숙하다. 소나무는 자신이 뿌리박고 자란 흙과 산세와 경관에 조화를 이루며 자라기에 그 멋은 어떤 나무의 추종도 불허한다. 그래서일까 어느 때부터인지 소나무는 자연스럽게 그림 속에 자리하였다. 구부러진 모양으로 높게 서 있는 붉은 소나무는 삶 속에서 평안과 안녕을 염원하는 또 다른 표현이 되었다. 그 동안에 그림의 표현 방식과 방법에서 조금씩 변화하였으나 작품의 기조는 그대로 유지하였다.
과거, 어린 시절 기억의 잔존에서 취한 모티브를 사실적 기법으로 염원을 표현하였다면 근자에는 화면을 단순화시켜서 각자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염원을 잠잠히 흘러들게 하고 싶어 비사실적이며 몽환적 표현을 사용한다. 낮과 밤이 공존하고 어둠과 밝음이 교차되는 서로 다른 시간대의 낮달,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친 이야기들은 화면에 오브랩되고 적송이 서 있다. 그림을 단순화시키고 강한 색감으로 소나무를 그린다. 아직도 혼자 연구와 모색을 거듭하며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곳엔 아직 아무 것도 없으며 아무도 닿지 않았다. 띄엄띄엄 늘어 선 적송들만이 사무치는 사람의 가슴에 심겨져 있다.
“作品은 한 藝術家의 分身이라고 말한다면 崔君의 創作態度는, 처녀가 東洋刺繡를 한올 한올 미래의 오색 꿈을 아로 새기듯 모든 事物을 착실하게 다져가는 行動은 곧 崔君의 分身의 밀착인 듯 느낄 때가 가끔 있다.”
작가로서도 존경하는 은사님께서 생전에 주셨던 말씀이다. 예서는 너무 먼 옛일이지만 가끔은 어제인양 회오리친다. 인생이란 시간 속에서 깎이고, 닳으며 작가로서 心眼이 열려 만인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품을 이어가길 은사님은 바라셨다.
상황과 시간에 타협하며 나태해질 무렵이면 나무 하나를 외롭게 그려두고 멈추지 않는 붓질로 하얗게 밤을 이룬다. 소나무에 핏빛같은 붉은 염원을 담는다.
최병창(미술교육과 졸업 동문, 미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