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의미
너의 의미
  • 언론출판원
  • 승인 2020.11.0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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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러내리는 무더운 여름날, 우리는 눈이 마주친 순간 물통에 물을 가득 담아 머리에 붓고 입에 물을 머금어 서로의 얼굴에 내뿜었다. 물장난을 치며 뛰어다니다보니 순식간에 복도는 만신창이가 되었고 지나가던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혀를 차며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런 것에 전혀 연연해하지 않았던 우리는 물에 젖은 생쥐 꼴로 깔깔거리며 복도를 닦고 뒷정리를 마친 후, 뒤늦게 음악실로 뛰어갔다. 학교에서 제일 시원했던 음악실에서 에어컨 바람으로 젖은 머리와 옷을 말리며 수업을 들었던 그 순간이 너무나 생생하다.

  우리는 항상 2:2 구도로 놀곤 했다. 사마귀와 거미는 연합을 맺은 후, 돼지와 메기를 놀리고 도망 다니는 역할이었고 돼지와 메기는 둘을 잡으러 다니는 역할이었다. 넷이 한 팀이었을 때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서로 욕을 하고 비난하더라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우리의 단결은 놀라울 정도로 대단했던 것 같다. 우리끼리 있을 때도 그러했다. 이 세 명 친구와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학교 밖에서 같이 놀러 다녔던 것보다도 학교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더욱 크게 와 닿는다. 아침에 지각을 하더라도 꼭 같이 먹을 간식들을 챙겨 와서 몰래 나눠먹고, 수업시간에도 히히덕거리면서 만날 잡담하다 혼나고, 점심시간은 종 치기 5분 전부터 시계를 쳐다보며 1등으로 밥을 먹었던 우리이다. 놀 때도 항상 별나게 놀았는데 학교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다가 유리문도 깨고, 교실문도 부수는 등 하루도 평범한 날들이 없었다. 선생님께 혼이 나면서도, 벌을 받으면서도 그 시간들을 함께 보냈다는 그 자체에 마냥 좋았다. 어른이 되고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천진난만한 우리의 모습들에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속상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문득 인*그램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또래 여자 아이들은 서로의 근황과 사진을 보면서 공주라 칭하며 칭찬하기 바쁜데 우리는 왜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기만 할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비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돼지, 메기, 사마귀, 거미, 누가 들어도 기분 나쁠 만한 이 단어들이 우리들에겐 애칭이었고 전혀 기분 상하지 않았다. 아, 잠깐 기분 상한 친구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받아들이고 좋아해줬다. 이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며 자신들의 콤플렉스나 단점들에 대해 무뎌지고 주변에서 뭐라 하건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단단함이 우리도 모르게 생겼다. 자신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좋아해주었던 우리들의 표현 방식이 지금은 ‘공주’, ‘이쁘다’ 이런 표면적인 말들보다 더 가치 있는 애정 어린 것임을 알았다. “에이 저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친구들은 나의 말에 공감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연락도 자주 하지 않는다. 가족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는 느낌 뛖문이지는 몰라도 굳이 연락을 하지 않아도, 근황을 억지로 알리지 않아도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오랜만에 만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그런 친구들이다. 또한, 이 친구들과 만날 때면 행복하고 힐링이 돼서 그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느낌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소중하고 당장 옆에 있지 않으면 허전할 것 같았던 이 친구들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너무너무 그립다.

  ‘나’란 사람을 정의내리기가 정말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들과 있을 때는 활발하고 또 다른 이들과 있을 때는 차분해지는 성격이라 어떤 모습이 진짜 나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이후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의 나를 생각해보며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이들과 있을 때는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분위기가 너무 힘들고 싫어서 분위기 메이커 급으로 오두방정을 떨고 활발해지는데 친한 이들과 있을 때는 조용하게 진중한 애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 편해지는 어떤 순간이 찾아오면 그냥 애쓰지 않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순간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고 나의 단점을 숨길 필요로 없는 편안한 그대로의 상태이다. 물론 처음부터 나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마음을 열었던 것은 아니다. 또래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나는 나를 속여 가면서까지 좋은 점들만 보여주려고 했었는데, 하나 둘 밝혀지는 나의 모습에 두려우면서도 그걸 좋아해주었던 친구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솔직한 내가 될 수 있었다. 지금은 벌써 멋스런 대학생이 되었지만 단순히 눈에 보이는 모습들뿐만 아니라 나의 내면에 공감하고 그 자체로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 옆에서도 빛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지아(체육교육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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