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빛나는 순간이란
나에게 빛나는 순간이란
  • 언론출판원
  • 승인 2020.10.0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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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 순간 ‘지금 내가 빛나고 있구나’라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행복이라는 감정이 빛나는 순간을 결정하는데, 그 감정이란 것은 아주 찰나에 피었다가 져버린다. 그래서 나는 그때가 빛나는 순간이었다는 걸 항상 한참 지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지나쳐 버려도 그것을 알 수 있는 이유는, 물론 특별하고 행복했었던 일은 노력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오래 기억되기 때문이지만 그런 일들을 그렇지 않았던 일과 함께 다이어리에 모두 기록해두고, 가끔 그렇게 적어놓은 것들을 꺼내서 읽어보기 때문이다. 나는 찰나의 감정과 순간을 영원하게 남겨놓은 그 추억들을 되새길 때 그때 내가 빛났었구나, 아마 나는 지금도 그때처럼 빛나고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유난히 파랗고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다이어리 페이지를 펼치면 친구들과의 그해 가장 행복했던 바다 여행이 기록되어 있다. 고등학교 생활이 끝나고 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때 각자의 고민과 걱정을 떠안고 갔던 여행이었다. 그곳에서 힘들었던 일들을 터놓고 얘기하면서 서로에게 공감하고 더 의지할 수 있었다. 아무도 없었던 밤바다 모래사장 위에서 시시한 농담을 하며 웃고 떠들 땐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화로운 충만감에 젖어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페이지 마지막 부분에 ‘꼭 함께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너도, 나도 우리라는 이름으로.’라는 조금 낯간지럽지만, 진심을 담아 적은 말들을 읽고 난 뒤에는 밤바다에서 다 같이 하늘을 바라볼 때 반짝이던 별똥별이 내 마음속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누가 봐도 반짝이는 듯한 페이지들의 뒷면에는 까맣게 적힌 글자들만이 무채색으로 존재한다. 빼곡한 글자들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으면 무채색의 그 이야기들이 이내 내 시야 앞에 펼쳐진다.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했던 불행들과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내 체념하게 된 이야기들. 빛 한줄기 들지 않을 것 같았던 나날들을 다시 되새길 때면 오늘의 나는 그 일들을 모두 버티고 이겨냈음을 상기하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그런 불행들이 닥쳐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 하루를 비추는 빛이 더 소중하게 다가옴과 동시에 스스로가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어두운 뒷면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는 찰나의 반짝임을 알아차리긴커녕 아주 당연하게 지나쳐 버렸을 것이다. 무채색의 어두운 나날도 빛나는 순간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그런 페이지들을 읽으면서 늘 다시 깨닫는다. 그런 어두운 나날을 무사히 보내왔음에 감사한 마음도 그 페이지의 마지막 한켠에 함께 기록해 보기도 한다.

  원색과 무채색의 극단적인 페이지들을 잇는 반복되는 일상의 단조로운 색에서도 언제나 반짝임은 존재하고 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들던 시간이나,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도 마스크 없이 아무렇지 않게 쏘다닐 수 있었던 날들처럼 과거의 나에게는 별것 아닌 일상이었던 일들, 나이를 먹어가며 나를 둘러싼 환경이 달라질 때마다 그 일상들이 다른 색과 밝기로 빛나게 되고, 어떤 일상의 시간은 아주 눈부시게 특별하고 소중했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언젠가의 내가 또 다이어리를 펼쳐서 날마다 기록한 페이지들을 차곡차곡 넘기게 된다면 하루하루가 또 다른 빛의 색으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의 삶이 언제나 다른 색깔과 밝기로 빛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줄기의 빛도 존재하지 않는 어둡고 무의미한 순간은 없다는 것을, 빛이 존재한다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로 흐릿하게 느껴지는 무채색의 나날들은 언젠가 다가올 순간의 반짝임을 더 아름답고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을, 그런 무채색의 글자들이 존재하기에 유난히 파랗다거나 하는 원색의 페이지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임을. 항상 다른 색으로 반짝이고 있는 빛의 밝기를 매 순간 측정하고 느끼는 것이 가능할까? 삶은 언제나 다채롭게 빛나고 있기에, 색색의 페이지들을 읽으며 추억을 되새길 때마다 빛을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 모두 다르기에 단 하나의 순간을 가장 빛난다고 정의하기 어렵다. 내가 가장 빛나던 순간? 나에게 있어서 내가 가장 빛나던 순간이 있었을까? 돌아보면 모든 순간이 가장 빛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으며, 또 그렇게 빛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제의 내가 가장 빛나던 순간도, 지금의 나에게 가장 빛나는 순간도 없다. 모든 순간이 언제나 변함없지만, 변화하는 빛의 반짝임을 간직한 채로 존재하기 때문에.

류승아(문화콘텐츠학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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