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오래된 미래, 급작스런 미래-‘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정일근의 발밤발밤] 오래된 미래, 급작스런 미래-‘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 언론출판원
  • 승인 2020.06.0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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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우다’는 책이 있다. 1992년에 출판돼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를 가진 책이다. 저자는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라다크는 ‘작은 티베트’라 불리는 인도의 서부 히말라야 고원의 작은 땅이다. 이 지역은 빈약한 자원과 연평균강우량이 84㎜밖에 되지 않는 건조기인 땅에서 ‘생태적 지혜’를 통해 천년이 넘도록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라다크까지 현대문명이 들어가면서 마구잡이식 개발로 환경이 파괴되고 사회적으로 분열되었다. 저자는 현장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며, 사회적·생태적 재앙에 직면한 우리의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희망을 ‘개발 이전의 라다크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오래된 미래’다. 우리의 미래는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어처럼 시간을 거슬러 가는 과거에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우리는 순식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미래’에 닿았다. 이 미래는 모두 마스크를 쓰는 시대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수 없다. 시원하게 기침을 하는 일이 죄가 된다. 손은 깨끗이 씻어야 하는데 30초 이상 씻어야 한다. 사람 대 사람 사이는 2m를 유지해야 한다. 그동안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사회적인 구호는 ‘뭉치면 죽는다’는 경고로 바뀌었다.

  우리 대학만 보자. 학생들이 강의실에 모여 교수의 강의를 듣던 대면 강의는 귀한 일이 되었다. 필자는 교양대학에서 100명에 가까운 학생들에게 강의한 적이 있다. 이제 그런 강의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강의를 통해 더 많은 학생에게 강의를 할 수 있다. 이 미래의 기한이 언제까지인지 몰라도 최소한 내년까지는 일상을 포기한 불편한 미래에 살아야 한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미래가 사는 동안 언제 불쑥불쑥 되풀이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제 인기 가수와 함께하는 캠퍼스 축제는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모이는 일보다 흩어지는 일에 익숙해야 한다. 그렇게 모든 질서가 재편되는 미래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군인들이 훈련을 받지 않는다. 불심검문이 아니라 수시로 체온을 체크당해야 한다. 스스로 섬이 되어야 살 수 있는 미래다. 왜 사느냐는 질문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절실한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한 시대다.

  이 미래는 천천히 진행되지 않았다. 순식간에 도착한 미래이자 오늘이다. 그래서 더욱 혼돈스럽다. 공동체보다 개인주의가 유리한 시대다. 혼밥을 먹으며 혼자 자고 혼자 깨는 미래다. 오래된 미래가 아닌 급작스런 미래다. 이 미래에서는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적응하지 못하면 판판이 퇴화할 것이다.

  러시아 시인 푸시킨은 이렇게 노래했다.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힘내자! 지금 우리는 힘든 시간에 지내지만 또 다른 미래가 올 것이니.

석좌교수·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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