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not help loving them
I cannot help loving them
  • 언론출판원
  • 승인 2020.06.0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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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어사전을 보다가 우연히 ‘사랑’ 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본 적이 있다. 모두가 아는 ‘좋아하는 마음’ 외에도 ‘생각의 옛말’, ‘애틋하게 그리워하다’라는 설명이 있었다. 그때 나는 사랑이 본질적으로 부재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내가 독서와 음악을 사랑하는 방법이자 이유였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남들이 보는 이미지에 짜 맞추기 바빴다. 세상에서 가장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내 가족에게도, 걸음마를 뗄 때부터 함께였던 친구에게도,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언제나 완벽하게 계산된 사람이었기에 그런 내가 유일하게 투정부릴 수 있는 곳은 책과 음악뿐이었다. 책 속의 문장들은 나를 관통하여 금세 벌거숭이로 만들기 십상이었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마다 늘 새로운 충격과 깨달음을 얹어두고 갔다. 그래서 난 감히 글 앞에서 거짓말하는 무의미한 배짱을 부리지 않는다. 또, 책을 읽고 나서 쓰는 독후감은 내 마음속 가장 깨끗한 부분을 거르고 걸러 올린 말들이어서 언제 봐도 좋은 것들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에 반해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저 감정의 연약한 부분을 건드려서인지, 눈물의 핑계가 되어서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건, 음악은 이미 내 삶의 태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항상 스스로의 원칙 속에 갇혀 할 수 있는 거라곤 원칙의 변주를 살피는 것이 전부였던 나와 반대로 음악은 딱히 가둬지는 원칙이 없었다. 원칙이라고 해봐야 멜로디 마디에 맞추어 가사를 넣어야 한다는 것뿐, 작곡자의 순정만 담겨 있다면 모든 것이 예술적으로 허용된다. 그리고 때로는 원칙을 벗어난 노래가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주곤 한다. 나는 그동안 누군가에게 나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두려워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음악은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틀을 무너뜨렸다. 내게 없던 것을, 즉 부재한 것을 다시 돌려주어서 사랑했던 책과 음악, 습관처럼 지켜오던 나만의 규칙을 지금은 하나씩 놓고 탈선하고 있지만 나는 오히려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고, 이제는 ‘좋아하는 마음’의 본질로 책과 음악을 사랑하고 있다.

  타인에 의한 착취는 저항심이 되지만 자신에 의한 착취는 죄의식이 된다는 말이 있다. 한 때 나의 가장 큰 적은 ‘나’였다. 언제부턴가 난 내가 정해놓은 선에 닿지 못하면 나 자신을 괴롭히고 또 괴롭혔다. 세상이 무너지듯 날 몰아세우고 가끔은 힘들다고 떼를 쓰면서도 나는 나에게 어르고 달랠 사탕 하나 건네지 않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를 ‘정신력’이라고 정의하지만 당시 나에겐 그저 죄의식을 씻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나는 그저 사방에 둘러싸인 철문 속에서 아등대는 모범수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계속된 착취가 익숙함에 무뎌져 갈 즈음 나의 빨간 명찰을 과감하게 떼어준 것이 바로 등산이었다.

  작년 가을, 나는 가족들과 등반을 위해 설악산으로 향했고, 우리는 과감히 고난도 코스인 대청봉 한계령 코스를 택했다. 왕복 소요시간 9시간으로 다른 코스에 비해 짧지만 험하고 거칠어 왕복 지점인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더 이상의 등반은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하산까지 시간이 촉박했던 터라 나는 또다시 ‘나’를 적으로 삼고 싸움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나’에게 패배했다. 올라올 땐 분명 힘들었던 오르막이 내려갈 땐 평탄한 언덕이었고, 바위를 넘어 쉼이 되었던 길은 반대로 내 숨을 턱까지 차오르게 했다. 내리막이라고 마냥 즐거워하며 안심할 땐 방심하지 말라며 한 번씩 넘어뜨려 주기도 했고, 같은 코스, 똑같은 소요시간임에도 하산하는 길은 훨씬 멀게 느껴졌다. 무사히 하산을 마치긴 했지만 난 분명 패배했고, 승리보다 값진 깨달음을 얻었다. 오르막은 분명 내리막이 되고,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개의 길을 모두 거쳐야 한다는 것. 언젠가는 정상에서 내려와야만 하기에 지금부터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을 배워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내가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나오는 사극의 주인공이 아니란 걸 이제는 안다. 모든 단면의 나와 싸울 만큼 강하지 못하단 걸 알고, 때론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이겨내기 불가능한 순간이 있다는 것도 안다. 물론 아직 나의 방향을 온전히 정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나’를 위해 가끔 지는 연습을 시작해보려 한다. 진정한 내가 더는 가려지지 않도록 새로운 발걸음을 내어준 이들을 나는 감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한지원(군사학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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