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귀룽나무 아래서 꽃처럼 맑게 울고 싶은 날이 있을 것이니
[정일근의 발밤발밤] 귀룽나무 아래서 꽃처럼 맑게 울고 싶은 날이 있을 것이니
  • 언론출판원
  • 승인 2020.04.2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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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이 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어떻게 3월이 왔다 갔는지 아슴푸레한데, 돌아보니 어느새 4월이 마지막을 향해 저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습니다. 북위 35도쯤에 주소를 두고 산 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겨울을 이기고 일어서는 찬란한 봄과 꽃 피고 지는 가슴 벅찬 4월을 맞이했는데, 우리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요?

  좋은 약속들이 3, 4월의 적바림 속에 많았는데 까마득히 잊고 지냈습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서고 흐르는 물에 비누로 손을 씻는 사이, 약속은 사회적 거리처럼 뒷모습만 멀뚱멀뚱 바라볼 뿐입니다. 그러다 귀룽나무 꽃 만나러 가는 약속이 떠올랐습니다. 꽃과의 약속을 잊어버린 것을 알았습니다.

  지난해 귀룽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습니다. 장미과 벚나무속의 낙엽 큰키나무입니다. 4월과 6월 사이에 피는 꽃이 장관인데, 흰 꽃이 필 때 나무가 펑펑 우는 느낌이 든다고, 나무를 사랑하는 친구가 소개했습니다. 나무를 만날 때 장소도 중요합니다. 귀룽나무는 서울 창경궁 안에 4월에 핀다고 했습니다.

  올 4월에 창경궁에 피는 귀룽나무의 눈물을 친견하기로 했었습니다. 서울 나들이가 힘든 현실이어서 잊고 있었는데 친구가 보낸 사진을 받고서야 4월인 줄 알았습니다. 귀룽나무가 맑게 우는 4월인 줄 알았습니다. 고향 진해의 36만 그루 벚꽃은 이미 속절없이 피었다 기약 없이 지고 말았습니다. 무릎 꿇고 만나는 봄까치꽃이나 별꽃에도 제대로 인사 나누지 못하고 4월이 가고 있습니다.

  재난의 시대, 우리는 무엇입니까? 따뜻한 눈빛, 정겨운 인사도 없이 꽃은 피었다 집니다. 날마다 발표되는 사망자 수를 확인하지만, 고인에게 어떤 고통이 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숫자로 집계되는 죽음 앞에 우리는 누구입니까? 생과 사 사이에 우리는 어떤 표정으로 서 있는 것입니까? 이별의 손수건 한 장 없이 바라보는 눈동자에 무엇이 눈부처로 앉을 수 있는지요.

  4월이 제 끝으로 가는 길에 바람이 세차게 불었습니다. 지나간 줄 알았던 꽃샘추위가 찾아왔습니다. 꽃들이 자신을 잊지 말라는 신호인지 강풍 앞에, 꽃샘추위 속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이 재난이 지나가길 기다립니다.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코로나19는 우리를 위협하는 고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무장 해제합니다. 마침표를 찍기 전에 결코 이 문장은 끝나지 않습니다.

  질본은 올겨울에 코로나19가 다시 유행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때가 오면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살게 될까요? 다행히 일상이 회복돼 다시 봄이 온다면 창경궁에 피는 귀룽나무 꽃 피는 걸 보러 가겠습니다. 내 눈물로 하얀 숭어리 꽃숭어리를 활짝 피우고 싶습니다. 참았던 눈물은 그날, 귀룽나무 아래에 다 쏟아내고 싶습니다. 다시 4월이 오면.

석좌교수·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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