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영지] 짧은 문장이 모여 상식적인 글이 되길
[월영지] 짧은 문장이 모여 상식적인 글이 되길
  • 박예빈 기자
  • 승인 2020.04.24 14:19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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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롤을 내리니 버퍼링이 걸린다. 버퍼링이 끝난 스마트폰 화면엔 새로운 글이 가득하다. 초마다 올라오는 새 게시물은 공감과 비난을 부른다.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은 대학에 입학하고 가장 먼저 설치하는 앱이다. 대학생들은 에타에서 수강 신청, 강의 후기, 동아리 등과 관련된 정보를 주고받는다. 같은 대학의 재학생들이 모여 만든 에타 속 공간은 타 대학생들이 볼 수 없다. 은밀하게 공유하는 나의 이야기와 대학에 대한 정보는 에타가 대학생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코로나19로 등하교하는 학우들이 없는 학내는 조용하다. 대학이 조용한 만큼 학우들은 에타를 찾는다. 요즘은 1학기 전면 온라인 강의, 줌(ZOOM), 등록금 관련된 글이 핫게시물(하루 동안 공감을 많이 받은 게시물)로 오른다. 대학과 관련한 이야기 외에도 학우들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각자의 일상을 공유한다.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대학에서 겪은 사소한 이야기가 에타에 게시되었을 것이다. 학기 초에 흔히 게시되는 글의 주제는 연애, 새내기들의 대학 생활, 복학생의 적응기 등이다.

  에타가 자유롭게 흘러가는 바탕엔 익명제가 깔려 있다. 익명제는 득과 실이 분명한 인터넷 제도다. 득을 느꼈다면 이젠 실을 느낄 차례다. 지난 14일,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캡처한 사진이 자유게시판에 올랐다. 사진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지 않고 모여 있는 학생회 일원들이 찍혀 있었다. 우리 대학 학생회가 가장 중요한 수칙을 지키지 않은 모습에 학우들은 크게 실망했다. 그러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에타로 옮겨오는 방식은 과연 옳았을까? 학생회 일원이라는 이유로 SNS 게시물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익명이라 가능한 행동이 점점 상식의 범주를 벗어났다.

  많은 문제가 존재하는 익명제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악성 댓글이다. 법은 세 가지 기준으로 악성 댓글을 판단한다. 악성 댓글은 단순히 다수나 집단을 향한 비난과 비방이 아닌 특정인을 지목해서 겨냥한 글이다. 실명을 쓰지 않아도 제3자가 내용을 보고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으면 악성 댓글이다. 두 번째, 상대방을 비방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글이다. 마지막으로 불특정 또는 여러 사람이 인식하는 공간에 댓글을 적는 행위이다. 우리는 인터넷에 글을 적기 전 비판과 비방을 구별하는 교양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릇을 데우면 금방 뜨거워지고 나중엔 겉이 까맣게 타버린다. 가만히 놓아두면 온도는 내려가지만 까맣게 탄 부분은 그대로다. 새까만 그릇이 딱 에타와 닮았다. 뜨거운 관심을 유지하던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화제에 가려져 금방 식는다. 그러나 특정인을 향한 비난과 비방은 그대로 에타에 기록된다.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된 글과 댓글을 쓴 익명의 학우는 그 글을 기억할까? 우리는 익명제로 얻어지는 이점을 지키기 위해 단점에 관대해지면 안 된다. 끝없는 새로움을 추구하여 쉽게 뜨거워지고 식기를 반복하는 에브리타임은 오늘도 어김없이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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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20-05-19 13:15:44
이번 월영지는 수많은 고민과 자료조사가 필요했던 글 같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60기 사회부,,,,,장 2020-04-25 11:53:46
와,,,,역시 사람은 위치에따라 성장한다고 하던가요,,,
중도를 지키며 뼈아픈 현실을 적절히 풀어쓴 최고의 기사입니다...!!!

김홍구 2020-04-25 01:51:54
소통이 소통이 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또봇 2020-04-25 01:09:22
언제나 시끄럽기에 소통이 이루어지고 변화가 이뤄지는 거 같아요. 좋은 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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