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에 표시된 친구 생일이 다가오면 나는 분주해졌다. 필요한 물건을 사주진 못 했지만, 구구절절 쓴 편지는 항상 동봉했다. 편지지에 마음속으로 말하던 부끄러운 말들을 담았다. 온전히 그 친구를 위한 말들이 모이다 보면 어느새 편지지는 두 장, 세 장으로 늘어나 있었다. 나는 편지를 받아도 좋았지만 쓰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더 좋아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편지를 썼던 날이 언젠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생일이나 특별한 날에 준비했던 편지는 언제 내 손을 떠났을까?
메신저가 발달했다. 요즘은 문자가 아닌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카카오톡은 금융, 택시, 지도 등 손이 닿지 않는 서비스가 없다. 그중 상대방에게 선물 주는 기능까지 있다. 채팅방에서 ‘선물하기’를 클릭하고 원하는 기프티콘을 결제한다. 기프티콘 결제할 때 짧은 쪽지도 쓸 수 있다. ‘생일 축하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고 행복하세요.’라는 말과 이모티콘 몇 가지를 붙이니 더 써지지 않는다. 쪽지가 허용하는 글자 수는 60자이다. 정해진 글자 수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못했다. 짧은 쪽지와 함께 메신저로 전하는 마음은 간소하게 느껴졌다.
정이 없는 서비스지만 나도 매달 사용한다. 버튼 하나가 친구 생일을 기다리며 몇 달 동안 선물과 편지에 고민하던 날을 청산하게 했다. 그런 날이 이어지니 달력에 친구들 생일을 적던 버릇도 없어졌다. 카카오톡 알림으로 급히 선물과 쪽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나도 모바일 선물을 더 많이 받게 되었다. 선물과 쪽지는 매번 고마웠지만 기쁜 마음은 짧게 머물렀다. 그런 날엔 괜히 편지를 모아놓은 상자를 꺼내 보았다. 수많은 글을 읽다 보면 당시 느꼈던 감정이 나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일까? 힘들거나 울적한 일이 있으면 그 상자 속에서 웃음을 찾았다.
살다 보니 고마운 사람은 끝없이 늘어나는 중이다. 매번 고맙다고 하지만 내뱉고 사라지는 한마디가 힘없이 느껴진다. 말은 어느 순간 기억 속에서 사라져 형체를 잃는다. 그리고 말로 하긴 낯뜨거운 이야기도 많다. 두고 꺼내 보는 편지를 쓰려 하니 딱히 이유가 없다. 특별한 날이 아닌 친구에게 편지라니 조금 부담이다. 그래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생일로 미뤄두었다. 하지만 고마웠던 감정이 그날엔 희미해져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런 핑계들로 생생한 고마움은 주인을 찾아가지 못했다.
벚꽃이 흩날리는 따스한 4월이다. 봄기운이 공기 중에 흐르는 이 순간을 특별한 날로 정했다. 그리고 가장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편지를 써보았다. 오랜만에 쓰는 편지에 나도 어색해졌다. 그러나 편지 안에서 누구보다 솔직했다. 꾹꾹 적어놓은 모든 말이 진심이다. 횡설수설하는 말투가 신경 쓰이지만 두서없는 말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것을 안다. 비싼 돈 주고 산 선물보다 값진 편지를 잘 포장하고 이제 전해보려 한다. 가벼운 종이에 담긴 무거운 내 진심을 느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