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지역 인물(13)-현대시의 지평을 넓힌 시인, 김춘수(金春洙)(1922~2004)
이달의 지역 인물(13)-현대시의 지평을 넓힌 시인, 김춘수(金春洙)(1922~2004)
  • 언론출판원
  • 승인 2020.04.0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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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의 지평을 넓힌 시인, 김춘수

  김춘수 시인은 1922년 경남 통영시 동호동 61번지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통영보통학교와 경기중학교에서 수학했다. 1940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 예술학원 창작과를 다녔으나 3학년 때 불경죄로 6개월간 구금되고 퇴학당했다. 구금에서 풀려난 뒤 금강산에서 요양하고, 1944년 독립운동가 명도석의 다섯째 딸 명숙경과 결혼하여 마산의 처가에서 머물렀다.
  광복이 되자 통영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유치환, 윤이상, 전혁림, 김상옥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결성해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펼쳤다. 1946년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경남지부에서 발간한 『해방1주년기념시집 : 날개』에 「애가」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우파 문인들과 적극 교류하며 마산에서 조향, 김수돈과 함께 동인지 《낭만파》를 발간하고, 대구의 《죽순》, 진주의 《영문》 등에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시세계를 가다듬었다.
  1949년 마산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천상병 등의 시인을 길러냈고, 문총 마산지부의 초대 지부장을 맡아 기관지 《낙타》를 발간하는 등 지역문학의 토대를 형성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이 무렵 대표작 「꽃」을 비롯한 존재론적 시들을 탄생시키며 개성적인 문학세계를 실험하였다.
  1959년 해인대학(현 경남대학교) 조교수로 임용되었고, 1961년 대구로 이주해 경북대학교와 영남대학교에서 창작과 시론 연구에 매진하며 많은 시인을 길러냈다. 이후로도 2004년 83세로 생을 마칠 때까지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만의 문학을 깊이 추구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전두환 군사정권에 참여해 국회의원을 지냄으로써 시인으로서의 삶에 큰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1948년 첫 시집 『구름과 장미』를 펴내며 본격적인 창작의 길에 나서 『늪』, 『기』, 『꽃의 소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타령조 기타』, 『처용』 등 16권의 시집을 남겼다. 그리고 시론집으로 『한국근대시형태론』, 『의미와 무의미』 등과 산문집 『여자라고 하는 이름의 바다』 등을 펴냈다.

 

존재론적 사유의 절정에서 핀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1952년 《시와 시론》에 발표된 「꽃」은 마산고등학교 교사로 있을 때 유리컵에 담긴 꽃을 보고 쓴 시다. 그러나 이 시에서 꽃은 실재하는 사물이라기보다는 언어적 호명을 통해 의미를 부여받는 관념적 존재다. 일본 유학시절부터 영미 모더니즘 문학에 심취했고, 릴케의 시에 큰 감명을 받았던 시인은 이 무렵부터 존재론적 사유에 기반한 자신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개척했다.
  이후 시인은 시의 가장 중요한 질료인 시어의 탐구에 집중하고 새로운 기교를 실험함으로써 시의 미적 근대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이는 낡은 언어적 방법으로는 대상의 본질을 담아낼 수 없고, 또 언어는 사물의 의미를 담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아름다움만을 드러낸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시적 방법론은 관념이 배제된 서술적 이미지의 실험을 거쳐 마침내 언어로부터 의미를 완전히 제거한 무의미시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처용단장」 연작시를 통해 드러낸 무의미시의 세계는 시를 현실과 관념으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시의 온전한 자유를 획득하고, 의미로부터 자유로워진 순수 언어로 시의 미학적 완결성을 추구하고자 한 시인의 의식적 산물이다. 이는 시인의 타고난 허무주의적 세계관과 이에서 말미암은 탈현실, 탈역사, 탈이데올로기적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김춘수는 일생에 걸쳐 근대 미학의 본질을 치열하게 탐구하고 파격적인 시적 실험을 거듭함으로써 현대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한편으론 현실에서 도피한 채 자의식의 세계에 빠져 시를 말놀이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적인 평가도 뒤따른다.
  그러나 마산 3.15의거 당시 누구보다 먼저 발표한 시 「베고니아의 꽃잎처럼이나」를 통해 탈역사와 탈이데올로기를 지향했던 시인에게도 결코 외면할 수 없었던 역사적 사건이 있었고, 의미의 시로써 현실에 적극 참여했던 순간이 있었음을 또한 기억하자.

 

베고니아의 꽃잎처럼이나
- 3.15 마산 사건에 희생된 소년들의 영전에

남성동 파출소에서 시청으로 가는 대로상에
또는
남성동 파출소에서 북마산 파출소로 가는 대로상에
너는 보았는가....... 뿌린 핏방울을
베고니아의 꽃잎처럼이나 선연했던 것을.......
1960년 3월 15일
너는 보았는가....... 야음을 뚫고
너의 고막도 뚫고 간
그 많은 총탄의 행방을......

남성동 파출소에서 시청으로 가는 대로상에서
남성동 파출소에서 북마산 파출소로 가는 대로상에서
이었다 끊어졌다 밀물치던
그 아우성의 노도를.......
너는 보았는가....... 그들의 애띤 얼굴 모습을.......
뿌린 핏방울은
베고니아 꽃잎처럼이나 선연했던 것을.......
                                 - 1960년 3월 28일자 국제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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