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100년, 그 발자취를 따라서
한국 영화 100년, 그 발자취를 따라서
  • 추수민 기자
  • 승인 2020.04.0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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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영화가 어느덧 100주년을 맞이했다. 10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한국 영화는 다양한 장르로 관람객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최근 한국 영화가 국내를 벗어나 해외에서도 큰 인기다. 지금 세계적으로 핫한 한국 영화의 성장기를 살펴보자.  / 문화부


  한국 역사상 최초로 <의리적 구토>가 개봉되었다. <의리적 구토>는 부유한 집 아들 송산이 재산을 탐하는 계모 때문에 고심 끝에 결국 정의의 칼을 빼 든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 연극과 영화가 혼합된 ‘연쇄극’ 형태를 띤다. 연쇄극은 연극과 영화가 가미되어 100% 영화라고 할 수 없다. 이 영화는 1919년 10월 27일에 처음 상영됐다. 이날은 한국인이 만들고 투자한 최초 영화가 공식 상영된 날이라서 ‘영화의 날’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 영화의 성장 과정

  1920년대 영화 <월하의 맹세>는 조선 총독부 지시로 제작되었다. 극장에서 개봉되지는 않았지만, 최초로 만들어진 극영화라는데 의의가 있다. 나운규 감독 <아리랑>은 당시 최고 인기를 끌면서 2년 6개월 동안 상영되었다. 덩달아 주제곡이었던 ‘신아리랑’도 흥행에 힘입어 전국적으로 유행했다.
 1960년대 한국 영화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는 서민 가족 일화를 재밌고 유쾌하게 풀어내 개봉 당시 대흥행했다. 이 영화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에 선정되었다.
 1980년대 초반 한국 영화계는 참혹 그 자체였다. 정부에서 시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이끌기 위한 3S 정책을 실시하면서 정치, 사회면으로 심한 검열을 받았다. 그리고 홍콩과 할리우드 등에서 영화가 유입되어 국내 영화는 점차 외면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로 영화는 크게 성행했다. 대표적인 영화는 <애마부인>이다.
 1990년대 초반에는 기획자의 등장과 대기업이 영화계에 뛰어들면서 새로운 시도를 한 영화가 속속들이 극장계를 점령했다. 당시 가장 파격적인 영화는 <쉬리>였다. 1999년도에 상영한 영화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품 수준이 높았다. 6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동원하며 큰 사랑 받은 영화임을 증명했다.
 2000년대는 천만 영화의 시발점이었다. 최초로 <실미도>가 11,081,000명 관객을 동원하여 영화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후 <태극기 휘날리며>가 흥행 홈런을 터트리면서 천만 영화 반열에 올랐다. <국가대표>와 <추격자>와 같은 영화도 덩달아 인기를 얻어 다양한 장르가 생겨났다.

 

*우리나라를 빛낸 영화들

  우리나라를 빛낸 한국 영화 중 천만 영화를 흥행순으로 나열해보자면, 김한민 감독 <명량>, 이병헌 감독 <극한직업>, 김용화 감독 <신과 함께: 죄와 벌>, 윤제균 감독 <국제시장>, 류승완 감독 <베테랑> 등이다.
  첫 번째는 김한민 감독 <명량>이다. 2014년 7월 30일 개봉했으며, 누적 관객 수 17,615,658명이다. 영화는 자랑스러운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배경으로 한다. 1597년 임진왜란 6년째에 한양으로 북상하는 왜군을 막기 위해 누명을 쓰고 파면당한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다. 휘하의 장수와 백성들은 패배를 확신하며 절망했으나, 이순신 장군은 지형을 이용한 전술과 12척의 배로 명량 해전을 승리로 이끈다. 영화에서 해상 전투 장면을 61분이나 촬영하여 지루하지 않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 번째는 이병헌 감독 <극한직업>이다. 2019년 1월 23일 개봉했으며, 누적 관객 수 16,266,099명이다. 극한직업이 천만 영화 등극하면서 이후에 제작되는 코미디 영화에 힘을 실어주었다. 또 한국형 코미디 영화가 고수한 기존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틀을 만들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극한직업>은 소상공인의 애환을 그려내어 많은 공감을 받았다. 낮에는 치킨 장사, 밤에는 잠복근무하는 마약반 형사들의 위장 창업 수사극이다.
  세 번째는 김용화 감독 <신과 함께: 죄와 벌>이다. 2017년 12월 20일 개봉했으며, 누적 관객 수 14,411,775명이다.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 함께>를 원작으로 두고 있으며, <신과 함께: 죄와 벌> 개봉 후 1년 만에 <신과 함께: 인과 연>을 개봉했다. 2편으로 제작된 <신과 함께: 인과 연>도 누적 관객 수 천만 명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신과 함께> 시리즈는 불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신과 함께: 죄와 벌>에서는 주인공 김자홍의 지옥 재판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상세하게 그려냈다.
  한국 영화 100년 역사상 최초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도 빠질 수 없다. 봉준호 감독이 제작한 <기생충>은 2019년 5월 30일 개봉했다. <기생충>은 겉으로 보기엔 가족 영화 같지만, 실상은 대한민국의 모든 부조리가 집약된 영화이다. 봉준호 감독의 이전 작품 <플란다스의 개>, <설국열차>에서도 사회 계층의 양극화 문제를 다루었다. 칸, 베니스, 베를린 국제 영화제는 세계 3대 국제 영화제다. 2002년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감독상을 받으면서 칸 국제 영화제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전도연 배우가 수상하며 칸과 한국 영화는 친밀해졌다. <기생충>은 칸 영화제 72년 역사상 8번째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아시아 영화가 되었다. 한국 영화로썬 최초의 수상이기에 더욱 빛난다.

 

  한국 영화는 초기부터 지금의 황금종려상 수상까지 많은 흔적이 남아있다. 영화는 논란이 되기도 하고,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한다. 배급사의 독과점이 문제가 되기도 해서, 영화 제작에 어려움이 따르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 영화의 현재와 미래는 차곡차곡 쌓아 올린 과거 한국 영화로부터 만들어진다. 흥행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한국 영화 역사를 만든 영화 종사자 모두의 노고를 치하 할 때이다.

추수민 기자 chusumin0521@naver.com
강화영 기자 kupress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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