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월영캠퍼스의 봄,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봄에
[정일근의 발밤발밤] 월영캠퍼스의 봄,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봄에
  • 언론출판원
  • 승인 2020.03.18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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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란 시의 첫 부분입니다. 대구 출신 이상화(1905~1943) 시인의 대표작품이며 많은 국민들의 애송시입니다. 그는 1922년 ‘백조’ 1호를 통해 식민지 시대 반도의 시인으로 등단을 했습니다. 일찍 끝난 인생이기에 생전에 출간된 시집은 없었습니다. 사후에 시집과 전집이 묶여져 나왔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94년 전인 1926년 ‘개벽’(開闢)에 발표되었습니다. 제목만 봐도 일제 강점기에 굽힐 수 없는 민족의식을 표현한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나라는 빼앗겼지만 우리에게 민족혼을 불러일으킬 봄은 빼앗길 수 없다는 강력한 저항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이런 내용 속에서, 빼앗긴 나라지만 오는 봄은 신명이 나도록 경쾌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상화 선생이 일제강점기 지식인으로 느꼈던 비애를 저는 요즘 우리 대학 월영캠퍼스의 봄을 바라보며 똑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공포가 월영지의 봄마저 빼앗아버린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월영지의 봄이었습니까! 캠퍼스의 낭만은 실종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우리는 서로에게 두려운 존재로 남았습니다. 세계는 이미 전염병의 팬데믹 상태고, 경제는 꽉 막힌 터널 속에 갇힌 듯 어둡기만 합니다.
봄이면 설레는 마음으로 학생들과 만나던 첫 강의는 인터넷 강의로 바뀌었습니다. 캠퍼스의 주인공은 학생입니다. 주인을 잃은 캠퍼스는 텅 비어버리고, 화사하게 피었던 꽃은 침묵하며 웅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활짝 핀 목련나무에 기대어 휘파람을 불던 기다림의 시간마저 잊혔는지, ‘고도를 기다리던’ 1980년대 캠퍼스보다 더 우울합니다.

  이상화 선생은 식민지 조국에서 희망을 잃지 않았는데, 저는 이 위기와, 위기 뒤에 닥칠 후폭풍을 생각하면 어떤 희망의 봄 편지를 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월영캠퍼스로 오는 봄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염병에 빼앗긴 캠퍼스지만, 여기는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우리들의 봄이고 축제이기 때문입니다.
오래지 않아 캠퍼스에 벚꽃이 만개할 것입니다. 꽃들이 무용지물이 될까 안타깝습니다. 진해군항제도 취소되었습니다. 그대. 포기하지 맙시다. 절망은 더 위험한 전염병일지 모릅니다. 지금은 코로나19의 팬데믹 시대, 우리의 봄마저 잃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새내기들의 건강한 미소와 웃음을 만날 것이라 기대하며, 봄의 행진곡 같은 힘찬 안부를 전합니다.

석좌교수·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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