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 아고라] 바다가 보인다
[한마 아고라] 바다가 보인다
  • 언론출판원
  • 승인 2020.03.1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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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가 좋았다.
  노를 저어 바다로 나아갔다.
  열심히 노를 젓는 것만을 생각했다.
  파도가 밀려 들어와 노를 놓쳐버렸다.
  망망대해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제야 바다가 보였다.

  태생이 도서 출신인지라 멀미가 없다고 믿어 왔지만 이제야 나도 멀미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산발적으로 기괴한 소리가 들려오고,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자 토기가 올라왔다. 요동치는 리듬에 맞춰 토사물이 흩날리며 피부를 핥고 지나간다. 울릉도에 입도하는 새벽 여객선 안이다. 그 난리통 속에서 그제까지의 생활을 되돌아본다. 생활비와 학자금을 벌어가며 대학원을 나왔고 조교로, 연구원으로 대학에만 13년을 있었다면 평탄한 인생을 살아온 것이 아님을 미루어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바쁘게 살아왔다. 뒤를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어질 즈음 지방공무원에 응시하였고, 7급 상당의 연구직에 임용되었다. 서류 제출을 위해 들어온 울릉도는 어린 시절 고향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어머니의 애창곡 ‘섬마을 선생님’이 절로 나왔다. 여기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모든 것이 생경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느낌을 즐기며 저녁 6시가 되었다. 아직 집을 구하지 못한 탓에 숙소를 궁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업무가 끝나지 않는다. 사담도 않고 타자 두드리는 소리와 통화, 업무지시 소리만이 사무실을 울린다. 워커홀릭이라 불린 입장으로 보기에도 이번 직장은 일에 미쳐 있었다.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만큼 집과 직장의 경계가 없다. 근처 민박집을 숙소로 잡고 밀린 업무를 주말에 처리해내며 짬짬이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한 달이 지나면서 어째서 업무가 바쁜 것인지 흐릿하게 알게 된다. 임용된 분야에 대한 실무경험이 있고 나름의 경력이 있었지만 통용되지 않았다. 업무의 경계선이 불명확하며 품앗이를 하듯이 바쁜 업무에 우르르 몰려다닌다. 7급의 연구직에 임용되었지만, 하는 일은 행정직 말단이나 다름없었다. 조용한 시골길을 자전거 타고 다니며 한적하게 지낼 줄 알았는데, 거리가 조금 멀었다. 외따로 떨어져 있고 좁은 지역의 지자체에서 일이 얼마나 많겠냐고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독도에 헬기가 추락했다. 가을비가 퍼부은 날에 산비탈 중간 즈음의 도로 지반이 붕괴했다. 민가가 전소하기도 하고, 산불이 날 뻔한 날에는 소 막사가 불타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불난리가 지나가고 난 후에 물난리가 시작됐다.

  어느 날. 팀장이 숙소에 내방하고는 자기 집에서 생활하라는 권유를 했다. 도시였다면 불러들이는 사람도, 그렇다고 가는 사람도 이상했겠지만 기꺼이 겨울 더부살이를 시작했다. 저녁 식사에 초대해주는 지인들이 생겨났다. 신고 왔던 구두의 밑창이 반 정도 떨어질 즈음의 일이었다. 안면이 있는 분들이 집을 알아봐 주신다. 집도 절도 없는 생활을 종식하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방을 얻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들어왔다. 통발을 놓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생기고, 지천에 널린 산나물을 알려주는 사람이 생겼다. 항구에 앉아 함께 그날의 피로를 토로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통발에 문어가 잡힌 날에는 동네에 잔치가 열렸다. 생각해보면 새해 첫날 식을 무사히 마치고 먹은 떡국은 맛있었고 눈을 치우며 모여 앉아 마시는 커피도 따뜻했다. 언제나 느끼지만, 풍광은 정말 멋진 곳이다. 산위의 눈보라가 내려와 비가 되어 흩날린다. 하늘과, 바다. 그 사이의 섬. 그리고 아기자기한 건축물과 특색 있는 길들. 그 안의 사람.

  돌아보니 이제야 사람같이 사는 것 같았다. 다시 바다가 보인다.

  새로 시작하게 될 여러분들이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지내게 될지는 모른다. 다양한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장담하건대 견디어낸다면 행실과 시간이 자신을 나아가게 도와줄 것이다.

주차돈(대학원 인문학과 기록관리학 전공 석사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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