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모든 일이 새롭고 설레었다. 꿈을 맘껏 펼칠 대학이라는 곳에 처음 발을 내디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자는 사범대학 음악교육과 18학번으로 입학했다. 입학 전에도 입시 스트레스 때문에 음악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입학 후에는 음악을 전공으로 삼다 보니 스트레스가 더 극에 달했다. 음악을 너무도 사랑했지만, 처음 마주하는 방대한 음악 지식 앞에 기자는 무너졌다. 이런 스트레스를 풀 그 어떤 무엇인가의 활동이 절실히 필요했다.
당시 기숙사에 살았던 기자는, 예술관을 가기 위해 디자인관 엘리베이터를 애용했다. 동기와 함께 기숙사에서 예술관을 향하던 중 디자인관 한쪽 벽면에서 이유 없이 끌리는 한 공고문을 발견했다. 그 공고문의 발견이 2년간 이어진 우리 대학 기자로서의 세월 중 첫 시작이었다. 공고문에는 ‘61기 학보사 수습기자 모집 중’이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강의가 끝나고 곧바로 집에 가는 길에 공고문에 남겨진 번호로 연락을 했다. 그렇게 면접을 보고, 한 학기 동안 수습기자 활동이 시작됐다. 마침 학보사 국장님은 같은 학과 4학년 선배였다. 나에게 기자의 길은 운명이고 필연적이라 느껴졌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러하듯, 여느 기관에서나 마찬가지로 학보사에는 행복한 일만 있지는 않았다. 때론 화가 나는 일도 있었고, 당장이라도 학보사를 나가고 싶은 일도 많았다. 학보사에서 일하는 동안 몸도 마음도 굉장히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 61기 동기들은 서로서로 위로하며 잘 견뎌주었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너무도 많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기에 다 추억이 돼 버린 지금은 웃으면서 넘긴다.
2년간의 기자 생활 중 작년 1학기 동안, 기자 다섯 명이 한 달에 2번씩 학보를 발간하던 때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서로가 힘든 걸 알기에 이해하려 했고 배려도 많이 하며 기자 정신 하나만으로 기사 발간에 열중했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의 우리가 너무 자랑스럽고 멋있게 느껴진다. 기자가 학보사를 떠나는 이 시점에 함께 동고동락했던 우리 61기 동기들 생각이 많이 난다. 다들 확고한 개성을 가진 탓에 다툴 때도 많았지만, 언제나 우린 하나였다. 그들이 있어 학보사에 계속 머물 수 있었다.
이제 기자는 본래 꿈인 음악 교사가 되기 위해 대학 생활 중 남은 2년이란 시간을 임용 공부에 열중하기로 했다. 학보사에서 기자로 있었던 시간이 좋은 경험으로 남아 기자를 성장시켰다고 믿는다. 2년이라는 긴 시간을 학보사에서 보낸 만큼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다. 하지만 남아있는 든든한 동기들과 선, 후배를 보며 마음 놓고 ‘음악 교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나려 한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이제 남아있는 그들에게 기자다운 인사를 건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