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원 칼럼] 꼰대를 위한 변명
[교직원 칼럼] 꼰대를 위한 변명
  • 언론출판원
  • 승인 2020.01.0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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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대학에 다니는 아들 녀석이 어렸을 때 한 번은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동물이 무어냐고 내게 물은 적이 있었다. 약간 뜸을 들이다가 코끼리라고 답했더니, 녀석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씩 웃으며 공룡이 답이라고 알려주었다. 멸종된 동물이 왜 거기 있느냐고 따지는 내게 녀석은 쌜쭉 토라지며 누가 멸종 동물을 빼랬냐며 다시 따져 물었다.

  흥미롭게도 모국어 습득이 끝나갈 무렵이면 아이들은 굴비를 엮듯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한데 모아 자기만의 색깔로 생각을 재단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인식의 틀은 사춘기가 지나면서 점점 단단해지고 강해져서 웬만해선 부서지거나 구부러지지 않는다. 갯바위에 찰싹 달라붙은 말미잘처럼 머릿속에 뿌리박힌 인식의 틀을 종종 고집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고상하게는 신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아뿔싸,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허술하기 짝이 없다. 조심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자기 고집만 내세우고 남의 말은 깡그리 무시하는 ‘확증 편향(確證 偏向)’의 늪에 빠지고 만다. 바로 이 순간 마법처럼, 꼰대가 등장한다. 다섯 살배기 아들 녀석처럼, 꼰대는 자신이 늘 정확하고 올바르다고 믿는다. 편향된 인식의 거미줄을 쳐놓고 다른 사람들을 옭아매는 데도 능숙하다. 꼰대의 고집은 얼음장처럼 딱딱해 도대체 다른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갈 틈새가 없다. 무엇보다 꼰대는 세상을 ‘같다 또는 다르다’가 아니라, ‘옳다 또는 그르다’라고 재단하길 좋아해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생각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쁜 사람’으로 보기 일쑤다. 십중팔구, 꼰대들은 “No, my horse is Maria.(아니, 내 말은 말이야...)”라는 말을 달고 산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뇌는 썩 믿을 만하지 못하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단발머리 소녀의 머릿결처럼 가지 무성한 버드나무는 거센 바람에도 너끈히 버틸 수 있는 유연함이 있다. 그러므로 꼰대는 들을 지어다, 그대가 철석같이 믿는 그 기억의 꾐에 휘어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권종일(영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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